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아침에] 21세기 문화의 흐름 속에서

노년에 접어들면서 내 삶은 느리게 가는 수레 위에 실려 가는 느낌의 일상이다. 거의 외출이 없는 생활은 또 다른 영역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집안에서 보내는 안일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되는 정보나 명강의, 복음의 말씀들, 남의 인생 사연들을 듣는 시간으로 소외되는 노년의 외로움을 피해간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가슴 아픈 인생 사연을 즐겨 듣는다. 심신의 고난과 고통의 암초를 겪어 낸 타인의 인생 사연을 통해서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사,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세상의 어둡고 추악한 뒷면을 자세히 알게 된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연출되고 있음에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즐거움이 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사람과 사람 관계가 아닌가 한다. 이 시대는 속이고 속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온갖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거짓 즉 가짜를 선동하며 남의 인생을 밟고 풍비박산을 내는 작태는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대개 인생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누구도 인간 심연의 바닥을 본 사람이 없기에 거짓, 가짜와 참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서로가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며 살아야 하는 살벌한 시대에 사는 것이다.   귀 기울이며 듣는 타인의 사연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잃은 것과 얻는 것이다. 자신도 빈곤한 처지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베풀었던 선행이 훗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축복으로, 즉 대박으로 돌아왔다는 훈훈한 얘기도 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하늘이 돕고 악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합당한 벌을 내린다는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는 얘기다. 사람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21세기의 문화는 속도, 가짜(거짓), 해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도에 적응하느라 허둥지둥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따라갈 수 있다. 가짜(거짓)얘기 들이 난무하고 그 가짜(거짓)는 진실을 때리고 억누르며 그 가짜의 악을 선으로 둔갑시킨다.   시대는 변하고 인간사회의 고정 관념은 끊임없이 해체되어 새롭게 개조되어가는 21세기 문화의 흐름 속에 우리는 옛것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종족끼리의 거짓(가짜)과 불신으로 마음 아픈 21세기 문화 속에서 우리는 갈대가 아니라 대나무가 되어 인간 본성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잘 견디고 버터 내야 하리라. 김영중 수필가이 아침에 문화 거짓 가짜 인생 사연들 속도 가짜

2024-04-19

[이 아침에] 시 같은 말

“아, 광합성 충전하시는군요.”   회사 점심 자투리 시간에, 볕 좋은 현관 앞 난간에 기대 서 있는 나를 보고 젊은 직원들이 말했다. 볕 쬐기를 우리는 일광욕이라 하는데 요즈음은 광합성 충전이라고 말하나 보다.   요즘 젊은이들의 말은 정말 기지가 넘친다. 또 준말이 넘쳐나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고, ‘생선’은 생일 선물이라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준말은 유행을 타는 한때의 슬랭도 아닌 것 같다. SNS 시대의 흐름 따라 말의 표현도 디지털화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관망하려 하지만 아무래도 말의 의미가 훼손된 것 같아 마뜩잖다. 준말이 표현의 자유라 해도, 자유에는 책임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한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더 빠르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흐름이라 해도, 우리 삶의 기본인 말의 품위는 지켜져야 한다. 이런 생각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꼰대의 외곬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별수 없다. 준말이 일상화된 신세대 화법을 따라 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고수할밖에.   ‘고전(classic)이 왜 고전이랴? 구식과는 차별되는 것으로 지켜내고 싶은, 언제까지나 좋은 것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라는 글이 떠오르며 준말의 대세가 비단 나 혼자만의 우려가 아닌듯하여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말은 곧 인격의 표현이자 그 시대 사회 풍조를 나타낸다. 우리 문화는 가까운 사이라도 적절한 예의를 갖춰 말하는 예절을 중시했다. 말의 절도가 미치는 품격이 삶의 품격으로 이어진다는 것의 가르침이다.    막내가 청소년기 때의 일이다. 아들에게 별스럽지 않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돌아온 대답이 불손한 듯해 당황했던 적이 있다. 어떻게 엄마에게 그런 언사를 쓸 수 있느냐며 다그쳤다. 그런데 엄마가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했다는 아들의 대답은 참담한 충격이 되어 엄마로서 나의 언사를 돌아보게 했다. 그날을 계기로 아들에게 하는 말은 외마디 외침조차 다듬으려 노력했다.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된 아들이 얼마 전 “엄마가 하는 말은 모두 시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예찬에 내가 제대로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너무 감동을 주는 칭찬이었다. 엄마로서의 인생 전반에 대한 귀한 찬사가 아니겠는가. 엄마 말을 시로 듣는 우리 아들이야말로 시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침 석양이 장관을 이룬 하늘을 보며 아들은 “노을 낀 하늘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래전 아들이 갑자기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당장 시야에 들어온 하늘을 가리켜 ‘노을 낀 하늘’이라 가르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형용구의 서정적 느낌이 한국말 초보인 아들에게 제대로 전달 될까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아들은 오래전 배운 어구를 이렇듯 멋지게 적용한 것이다. 아마도 그 말과 함께 그때의 풍경과 정취까지 아들 기억에 아름답게 간직되었나 보다.     한마디 고운 말이 심겨져 고운 말의 꽃을 피운다. 보라!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운 말을 품고 있다. 아름답게 꽃피우는 일은 우리 몫이다. 이영신 / 수필가이 아침에 오래전 아들 아들 기억 우리 아들

2024-04-18

[이 아침에] 21세기 문화의 흐름 속에서

노년에 접어들면서 내 삶은 느리게 가는 수레 위에 실려 가는 느낌의 일상이다. 거의 외출이 없는 생활은 또 다른 영역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집안에서 보내는 안일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튜브 등을 통해 소개되는 정보나 명강의, 복음의 말씀들, 남의 인생 사연들을 듣는 시간으로 소외되는 노년의 외로움을 피해간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가슴 아픈 인생 사연을 즐겨 듣는다. 심신의 고난과 고통의 암초를 겪어 낸 타인의 인생 사연을 통해서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사,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과 세상의 어둡고 추악한 뒷면을 자세히 알게 된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연출되고 있음에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즐거움이 많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사람과 사람 관계가 아닌가 싶다. 이 시대는 속이고 속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온갖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거짓 즉 가짜를 선동하며 남의 인생을 밟고 풍비박산을 내는 작태는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일상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는 대개 인생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지나간다. 누구도 인간 심연의 바닥을 본 사람이 없기에 거짓, 가짜와 참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서로가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며 살아야 하는 살벌한 시대에 사는 것이다.   귀 기울이며 듣는 타인의 사연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잃은 것과 얻는 것이다. 자신도 빈곤한 처지에서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베풀었던 선행이 훗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축복으로, 즉 대박으로 돌아왔다는 훈훈한 얘기도 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하늘이 돕고 악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합당한 벌을 내린다는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는 얘기다. 사람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21세기의 문화는 속도, 가짜(거짓), 해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도에 적응하느라 허둥지둥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따라갈 수 있다. 가짜(거짓)얘기 들이 난무하고 그 가짜(거짓)는 진실을 때리고 억누르며 그 가짜의 악을 선으로 둔갑시킨다.   시대는 변하고 인간사회의 고정 관념은 끊임없이 해체되어 새롭게 개조되어가는 21세기 문화의 흐름 속에 우리는 옛것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종족끼리의 거짓(가짜)과 불신으로 마음 아픈 21세기 문화 속에서 우리는 갈대가 아니라 대나무가 되어 인간 본성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잘 견디고 버터내야 하리라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문화 거짓 가짜 인생 사연들 속도 가짜

2024-04-17

[이 아침에] 살구꽃이 드디어 피었네

이십 년 전 심었던 살구나무에 꽃소식이 없었다. 그나마 그늘이라도 만들어줘 고맙다는 생각에 방치 상태로 뒀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겨울비에 풍덩 젖더니 처음으로 꽃이 몇 송이 피었다. 그러다 5월에 열린 살구 두 개를 따먹으며 다시 희망으로 나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거름흙을 사다 붓고 음식 찌꺼기도 거름으로 묻어줬다. 주변에는 고추 모종 서너 그루도 심었다. 상부상조하며 살라면서 날마다 바라보았다.     살구나무는 오래전 길을 걷다가 이웃집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참살구의 맛을 보고는 당장 한그루 사다 심은 것이다. 친정아버지가 심어준 살구나무의 추억을 생각했다. 미국 살구는 나와 친구들의 간식이었던 어린 시절의 살구 맛이 아니었다.     올해도 잦은 비로 우리 집 뜰은 웅덩이마다 물이 넘쳤다. 덕분에 살구나무 가지마다 꽃봉오리가 조랑조랑 맺혀있다. 이제 곧 만발한 꽃을 구경할 것이라며 잔뜩 기대했는데, 주말에 또 비가 내렸다. 해가 떠오르면 예쁜 벌들이 찾아와 열심히 꿀을 나르는데 말이다.   살아오며 내가 두려워하던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시기심이다. 시기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부와 명예, 직위를 탐하며 시샘을 한다. 그런데 친척끼리도 시샘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는 나의 내면이 늘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보면 관심이 생기고 그에게서 더 배우려고 노력한다.     슬프게도 세상이 너무 변해 혼자서도 잘 노는 시대가 왔다. 좋은 책과 종이 신문은 멀리하고 소셜미디어로 단순히 흥미로운 것들만 주고받는다. 골치 아픈 이야기들은 관심 밖이다. 생각 없이 세상이 시키는 대로 잘들 따르는 것 같다.   오래전 학창 시절, 내 주변에는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부친이 고급 공무원인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대입 재수생 시설 다녔던 서울의 종로학원 근처에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던 친구 집이 있어 종종 들렀다. 친구의 어머니는 늘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 친구 집에서 배고프면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며 신세를 졌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결혼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졌다. 난 지금도 변하지 않고 그런 우정을 기다리는데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아마 내 부모님과 반대의 삶을 산 분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삶의 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시샘이 난 빗줄기에 살구꽃은 우두둑 떨어졌지만, 그래도 부지런한 벌들 덕분에 조금은 열매를 만들어 주리라. 따듯한 봄날의 추억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선물 받으리라. 최미자 / 수필가이 아침에 살구꽃 이웃집 살구나무 살구나무 가지 오래전 학창

2024-04-14

[이 아침에] 누울 자리

6촌 동생의 생일에 다녀왔다. 나와 내 동생, 우리가 아저씨라 부르는 아버지의 6촌 동생, 그리고 생일을 맞은 6촌 동생네, 이렇게 4집이 모였다. 일가친척이 귀한 실향민의 자식들이다 보니 촌수와 상관없이 가깝게 지낸다. 지난해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부모님 세대는 모두 떠나시고, 이제 우리 시대가 되었다.     모이면 화제는 정치도 연예인의 스캔들도 아니다. 주변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복용하는 약, 어디 아픈 데는 무엇이 좋다더라는 이야기들이다. 이날은 무릎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온 숙모 탓에 자연스럽게 아픈 이야기로 시작해 장지 준비로 이어졌다. 6촌 동생의 아내가 장지를 마련하려고 요즘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나와 내 동생은 부모님 돌아가신 후 장지를 사 두었다. 장지는 5년 할부로 구입했고, 할부가 다 끝난 후에는 다시 장례보험을 5년 할부로 구입했다. 부모님은 같은 해 봄, 가을로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 미리 마련해 두셨던 장지와 장례보험 덕에 마음 편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주변에 나이 든 친구들이 여럿 있지만, 장지를 미리 마련해 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아마도 아직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죽은 후 어디로 갈 것인지는 개인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이다. 산소 쓰기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 후 납골당이나, 아예 바다나 산에 뿌려 달라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일찌감치 장지를 사놓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내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나 죽고 나면 아내까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5명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부터, 관이며 꽃, 장지, 화장해서 재를 뿌리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방법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살림에 여유가 있는 놈은 비용이 좀 드는 방법을 선호할 수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놈은 은근히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바랄 것이다. 서로 눈치를 보고, 언짢은 말이 오갈 수도 있다.     경험해 보니, 나는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산소가 좋다. 얼마 전에도 딸아이가 부모님의 산소 번호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알고 보니 그날 친구 할머니의 장례식 참석차 로즈 힐스에 갔는데, 간 김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고 가려고 한 것이다. 잠시 후, 산소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임에도 이를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은 소홀히 하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내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그분들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고,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으며,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글로 써 놓았다.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외가와 일가친척 이야기까지 썼다. 4년 전부터 매일 일기를 쓴다. 요즘은 번역기가 좋아 훗날 자녀나 손자들도 한글 원고를 번역기에 올려 영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기억하고, 행여 내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일가친척 이야기 할아버지 할머니 장지 준비

2024-04-10

[이 아침에] 나의 ‘노 쇼핑(No Shopping)’ 체험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옷 정리를 하는데 저쪽 박스에서 오늘 산 하얀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가 나왔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깨달았다. 색깔, 디자인, 사이즈까지 똑같은 옷을 두 벌 산 것이다. 가물거리는 기억력을 탓하기에는 사건이 너무 중대했다.   나름대로 바겐 헌터를 자처하며 충동구매를 자제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꼴이 되었다. 윤년이라서 그런가. 누구보다도 나에게 실망했고 앞으로 더욱 신중히 생각한 후 소비를 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석 달간 옷이나 신발 등의 원하는 물건을 일절 사지 않기로 했다. 지금껏 이런 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살면서 이것도 좋은 경험인 듯싶었다.     올 1월에 시작해서 3개월이 지났다. 금욕주의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한 달은 그럭저럭 버텼다. 두 달 가까이 되자, 물건을 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TV에서 선전하는 물건마다 다 가졌으면 했고, 아마존에서는 찜해 놓았던 귀걸이와 액세서리가 세일을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사지 않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지난 석 달간 지출 명세서는 거의 식료품과 레스토랑, YMCA 멤버십이 주를 이루었다. 운동이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기도 했지만, 하던 운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돈을 쓰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날에는 트레이더 조에서 작은 물병에 하얀 뿌리가 보이는 히아신스와 튤립을 샀다. 얕은 생각에 내 필요로 산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을 위해 샀으니, 이 약속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지 싶었다. 이왕에 사는 꽃이라서 종류별로 색깔별로 샀다. 갑자기 거실 한쪽에 미니 화원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을 못 하자, 식욕이 늘었다. 위가 든든할 때면, 포만감이 들어 심리적으로 안정됐다. 하지만 솟아나는 식탐을 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평소보다 먹는 양이 늘어나니 살이 찌기 시작했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굴 좋아졌다고 했다. 금단 현상이 이런 느낌이리라.     이에 비해 좋은 결과도 있다. 무심코 지출되는 푼돈과 씀씀이가 없어지니, 크레딧카드 빌은 확연히 줄고 은행 잔고는 올라갔다. 또한, 버리는 양이 줄어 쓰레기는 눈에 띄게 적어졌다.     계획에 없던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나자, 화장품도 떨어지고, 미장원도 가야 했고, 고무장갑도 사야 했다. 제한된 기간 끝까지 잘 참아 준 내가 자랑스럽다. 그동안 이해해 주고 도와준 가족도 고맙다. 소비하지 않아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음을 배웠다. 내년에는 미리 한 달을 작정하고 ‘노 쇼핑(no shopping)’ 생활을 하련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shopping 체험기 no shopping 기억력 개선 푼돈과 씀씀이

2024-04-04

[이 아침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물 걱정이 컸는데 겨우내 줄기차게 내린 비에 그나마 물 걱정이 사라졌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물 걱정이 없어졌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란다. 길이 패고,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진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비가 더 내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또 다른 물 걱정에 마음의 주름만 늘어간다.   가뭄이 한창일 때는 물도 물이지만, 산불로 인한 피해도 컸는데,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산불 소식이 뜸하다. 대신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은 야생화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피었다는 소식은 수줍음 많은 봄 처녀의 사뿐한 발걸음처럼 우리 마음을 괜스레 설레게 한다.     해마다 야생화가 단골로 피던 곳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사막 한복판까지 지난겨울에 내린 비를 깊이 머금고 있다가 봄의 기운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우는 것을 볼라치면 생명의 신비와 끈질김에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봄빛에 얼굴을 활짝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황량한 벌판을 형형색색의 꽃동산으로 바꾸어놓았다고 뽐내는 들꽃의 나댐과, 그에 지지 않으려는 듯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때마침 부는 바람에 맞춰 군무를 추는 봄 풀잎의 공연을 보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파랗게, 땅 전체를’이라는 제목으로 정현종 시인이 쓴 시다.     시인은 봄이 되자 기지개를 켜며 대지를 뚫고 올라와 세상을 파랗게 뒤덮는 봄 풀잎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 올리는 / 봄 풀잎 / 하늘 무너지지 않게 / 떠받치고 있는 기둥 / 봄 풀잎’     아무 데나 함부로 핀 봄 풀잎이 시인의 상상력을 만나자,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시인은 지천으로 깔린 봄 풀잎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경고한다. 깊이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나무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아니고, 우람하게 높이 솟은 나무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봄 풀잎도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말을 듣는 데 마음이 뜨끔했다.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부모의 기대는 어름적대다 지나간 세월과 함께 과거에 묻혔기 때문이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히 서서 세상의 유익한 사람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교정을 나서자마자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는 목사님의 간절한 당부는 엄범부렁하다 흘려보낸 세월에 밀려 효험 없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봄바람에 출렁이는 봄 풀잎처럼 하루하루 작은 일에도 휘청대며 사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향해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라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살라고 호령한다. 그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 풀잎처럼 가냘프지만, 서로를 버팀대로 삼고 가지런히 서서 고개를 반듯이 들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시인의 말은 백번 천번 옳다.     이제 우리 차례다. 봄 풀잎처럼 작고 연약하지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로 살아야 하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잊지 말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이 나름 괜찮은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하늘 기둥 정현종 시인 산불 소식 우리 마음

2024-04-03

[이 아침에] ‘종이 쪼가리’의 한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엄마가 11살 무렵, 1943년의 이야기이다. 충청도 산골 지름재에 사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마곡사 계곡에 운암 간이 학교가 있었다. 집안의 장손인 엄마 큰 사촌 오빠 혼자만 다녔던 학교.     엄마는 학교에 다니는 꿈을 자주 꿨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꿈을 같이 이야기할 사람조차 없었다. 지름재에서 마곡사까지 산길 20리. 길이 멀고 험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 항상 할 일이 많았다. 어린애 손이라고 놀릴 틈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 동네 어른들은 여자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학교는 못 가더라도 ‘은문(=언문)’은 깨치고 싶었다. 그마저 배울 길이 없었다. 장화홍련전, 숙영낭자전, 조웅전, 유충열전…. 이런 얘기책을 읽고 싶었다. 그 때 시골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는 것을 ‘깨친다’고 했다. 스님들이 도를 깨우치는 것과 맞먹는 큰일로 생각했다.     엄마에게 선생님이 나타났다. 큰 사촌 오빠의 새 각시. 그러나 대놓고 가르칠 수는 없었다. 삼대가 한 집에 사는 새 신부는 눈치를 보아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종이 쪼가리 (=쪽지)에 ‘가갸 거겨…’ 한글 샘플을 써서 엄마에게 몰래 주었다. 제사 때 지방 쓰는 종이에 몽당연필로 쓴 한글 자습서.   엄마에게는 유일한 교과서였다. 어른들 몰래 틈틈이 그 종이 쪼가리를 꺼내 공부를 하셨다. 한글의 원리가 머릿속에 그려지려고 할 때 즈음 외할머니한테 들켰다. 하필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며 그 종이 쪼가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그 종이를 낚아채서 엄마가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불에 던져버렸다.     “지지배 (=계집애)가 글을 배워서 워따 (=어디에)  써먹을라고.”  외할머니의 무정한 말씀 한마디로 상황 끝.   외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엄마 세대에게 글은 쓸데가 많았다. 살아오시면서 한글이 익숙치 않아서 불편을 겪을 때마다 엄마는 “그놈의 종이 쪼가리”사연을 되뇌셨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에서 오는 가정 통신문을 떠듬떠듬 읽어야 할  때, 보따리 장사를 하며 외상 장부 ‘치부책’ 정리가 너무 시간이 걸릴 때,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 오고 그 목록을 점검할 때….   엄마가 한글을 겨우 읽게 된 것은 해방 이후 동네 야학 덕분이었다. 시집을 와서 지름재 보다는 덜 시골인 삼바실에 사실 때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동네 아저씨가 저녁에 동네 사람들을 사랑방에 모아놓고 글을 가르쳤다. “가자에 ㄱ 하면 각하고, 가자에 ㄴ 하면 간하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이렇게 배우셨단다.     엄마는 그때 그 상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사흘 만에 은문을 다 깨쳤지.”  삼일 밤 다니고 아이가 아파서 더는 야학에 가지 못했다. 엄마의 ‘학교’ 꿈은 이렇게 끝났다.   엄마는 겨우 문맹을 면한 한글 실력으로 남의 도움 없이 장사도 하시고, 아파트 관리비도 내시고, 은행 거래도 하셨다. 엄마 말씀대로 “손톱으로 바위를 긁듯” 살아오신 일생에 한글을 깨우친 ‘득도’가 작은 지팡이 노릇을 했다.   이제 90이 넘은 엄마는 그리도 어렵게 배운 글자도 하나하나 버리고 계시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이제 ‘ㄱ’자 정도 남아있을까?  ‘종이 쪼가리’의 한도 다 잊으셨기를.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쪼가리 종이 종이 쪼가리 엄마 말씀 장손인 엄마

2024-04-01

[이 아침에] 우리 이제 ‘심안’으로 만나자

그녀와 나는 오래전 교회에서 만났다. 아니 그보다 전 한국에서 먼저 만났다. 나를 보고 국어 선생님이셨죠? 하는 걸 보면 공부엔 별 관심 없었던 듯하다. 나는 가정과목을 가르쳤고 내 기억에도 그녀가 뚜렷이 남아있지 않으니 서로 그렇고 그런 학생과 선생 사이였나 보다.   그래도 이역만리에 이민 와서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그 인연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불가에서는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7000겁, 부모와 자식은 8000겁, 형제자매는 9000겁, 그리고 스승과 제자는 무려 1만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나 형제자매의 인연보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몸은 부모로부터 받지만, 진정한 깨우침은 참된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히 ‘스승과 제자’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스승이란 호칭은 제자가 인정해야만 하는, 을이 인정해야 하는 갑의 호칭이어서 함부로 쓰긴 조심스러운 관계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가르친 학생인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여고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와서 결혼한 그녀는 나보다 빨리 자녀를 두었다. 우리 아이가 중학생일 때 그녀의 아들은 고교졸업반으로 하버드에 입학해 온 교인의 축하를 받았다. 내 일처럼 기쁘고 대견했다. 미국에서의 자녀교육 선험자여서 유익한 여러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교회의 분란으로 서로 교회가 달라져서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얼마 전 동료 문인과 이야기하던 중에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녀가 암 수술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가슴이 덜컥하는 소식이었다. 팬데믹 기간 중의 일이었다고 한다. 나 살기 급급해 잊고 산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지만 차마 연락을 못 했다. 무슨 위로를 해야 할까 생각나지 않고 남의 고통에 섣부른 참견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며칠 뒤 그녀가 먼저 전화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시간이 필요했다며 늦게 소식을 알려 미안하단다. 담담히 그간의 일을 말하는데 위로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어려운 시간을 견디고 이젠 현실을 수용했다고 한다. 남편이 조기 은퇴하여 극진히 보살펴주어 불편이 없다고도 했다.   “선생님과 타호에 함께 가서 종일 찬양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평생 그렇게 많은 찬양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오래전 남편의 가스펠 밴드에서 레이크 타호로 수련회 갈 때 초대했었는데 그때를 말하나 보다. 좋은 기억 속에 내가 남아있다니 다행스러웠다.   선생님을 한 번 봬야 하는데 미루다가 이렇게 되어서 죄송하다고도 했다. 한번 꼭 봬요. 남편이 데려다줘야 해서 시간을 맞춰보고 연락드릴게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이젠 큰 사람이 된 듯하다. 그녀가 스승이다. 우리 이제 육안보다 깊은 심안으로 만나자 J야!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심안 8000겁 형제자매 오래전 교회 오래전 남편

2024-03-31

[이 아침에] 마지막 편지

혹시 유서를 써 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는 분의 부음을 전해 듣고 불현듯 어김없이 다가올 내 생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엉뚱한 유서 얘기를 묻게 됐습니다.   저는 유서를 써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전, 2박 3일 일정으로 부부가 함께 성당에서 주관하는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이었습니다. 진행자가 내일 아침까지 완성해 오라면서 ‘당신은 내일 죽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유서를 쓰십시오’ 라는 주제를 벽에 걸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죽음이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구나.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야 하는 게 인생이구나.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방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둠이 깊어지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정말로 내일 죽음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정이 아닌 사실이라고 생각하니,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정하려고 해도 마음뿐이었습니다. 내가 죽다니.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죽어야 한다니. 살아온 날들이 한 장면씩 되살아나고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못한 많은 날이 참으로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미워했던 이들까지도 회개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죽음이 임박하니 순간순간이 절박하고 간절했습니다. 일분일초가 아까웠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틈이 없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왔습니다. 한없이, 끝도 갓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얼마나 울었을까.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내일은 내가 죽을 날이 아니었습니다. 아, 나에게 아직 생명이 남아있다니.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곁에 아내가 잠들어있었습니다. 눈 뜨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인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나뭇잎이 바람결에 한들거리고, 여명이 가만가만 온 누리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피정을 끝내고 나니, 모든 게 귀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친구도, 이웃도, 모두  새롭게 보였습니다. 나무도, 풀도, 나는 새도, 다 사랑스러웠습니다. 그것들을 얼싸안고 뺨에 비비고 사랑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적어도 피정을 끝내고 돌아온 한동안은 그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무디어지더니, 시나브로 그때의 감정이 메말라갔습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길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갈 때도 순서 없이 떠나야 합니다. 언제 세상을 떠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도 나도 말 한마디 못하고 허둥지둥 가야 할지 또 누가 알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나요, 늦지 않게 지금, 마지막 편지 한장을 써 보시면 어떨까요.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편지 마지막 편지 유서 얘기 새벽 공기

2024-03-27

[이 아침에] 졸업식 날의 희노애락

계절의 변화처럼 학제도 시간의 사이클로 움직인다. 한국에서의 3월은 입학식과 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언제나 입학식 날 헐렁한 새 교복을 입은 신입생들은 풋풋한 봄빛을 품고 서 있는 듯했다. 수업 시간 교실 안은 새로운 각오로 충만했다. 그러나 학기 초가 지나고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남학생들의 교복 단추가 뜯어지는 난투극이 벌어지는 것도 이맘때 부터이리라. 이렇게 성장통을 앓으며 3년이 지나면 학생들은 교문을 나선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 있거라 아우들아 …’ 송가와 답가가 끝나기도 전에 졸업식장이 울음바다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흑백 사진 속의 전설로 남아있다. 우리 세대도 졸업식 날엔 다시 입지 못할 교복을 입고 아쉬운 마음으로 교문에 들어섰던 것 같다. 선생님들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마지막으로 챙겨 주었고, 졸업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얌전하게 자리를 지켰다. 졸업식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꽃다발을 안고 가족·친지들과 사진을 찍고는 중국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교사로서 학생들을 떠나 보낼 때는 시간의 격차를 여실히 느껴야 했다. 졸업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으로 시작되는데, 단상에 초대된 내빈 한두 분의 장황한 축사와 교장 선생님의 조언이 이어지는 동안 남학생들이 가만히 앉아서 이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 외부 인사가 주는 특별상부터 교내 우수상 수여식이 계속되는데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이 상장과 상품을 받을 때마다 다른 졸업생들은 줄 맞추어 앉아 손뼉을 치며 축하의 뜻을 보내야 했다. 담임 교사로서 학생들 몸의 반응으로부터 마음에 어떤 기류가 흐르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교실에 돌아와 고별인사를 나누고 운동장에 나서는 순간 많은 졸업생의 행동은 돌변했다. 교복을 찢고 친구들에게 밀가루를 뿌리며 계란을 던졌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느낀 것이 많았다. 미국 고등학교의 성적 우수자 상장 수여식은 졸업식 전날 별도의 시간에 교내 어디선가 미리 열렸다. 그리고 졸업식 날 학생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관람석의 가족들은 풍선을 흔들고 환호하며 자녀 이름을 외쳤다.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졸업생 한 명 한 명을 안아주고 떠나보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졸업식 모습과 비교되는 듯해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90년대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나의 제자들, 그들이 졸업식장에서 보였던 행동은 아마 그들을 억눌렀던 규정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성적이라는 암묵적 서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었을까?     다소 거친 졸업식 뒤풀이 모습을 보였던 그들도 지금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리라.   권정순 / 전직교사이 아침에 희노애락 졸업식 고등학교 졸업식 초등학교 졸업식 졸업식 뒤풀이

2024-03-26

[이 아침에] 배꽃

비가 내린다. 꽃비가 내린다. 실바람이 불자 한 무리의 새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꽃비들. 한동안 공중에서 화사하게 춤을 추던 꽃잎들은 소리 없이 흩어지며 갈색 땅 위에 고운 꽃수를 놓기 시작한다. 쌉쌀한 바람과 함께 우아하고 고운 춤사위를 펼치고 있는 꽃잎들은 새봄의 시작을 알리려고 온 계절의 정령이려나.   새 계절의 향연을 축하하듯 수줍게 피어난 하얀 배꽃이 꼭 이월의 여왕 같다. 온몸을 순백으로 치장하고 신성한 혼례를 치르는 신부의 모습이다. 하늘하늘한 곱디고운 면사포를 쓰고 그 위에 흰 왕관을 얹은 이월의 신부, 순결한 자태가 눈을 부시게 한다. 환한 봄볕 아래 은은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배꽃은, 다가오는 미래에 꽃길만을 약속받은 듯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자세히 보면 배의 꽃잎은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며 즐겁기도 한, 절절한 삶의 사연들을 꽃잎마다에 따로따로 새기려 그리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해 전해 줄 말이 많은 꽃잎들은, 한 송이에 통째로 새기기보다는 조곤조곤 나누어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나무 위에서 피어나서 한 생, 땅에 떨어져서 한 생 그리고 열매를 맺어서 다시 또 한 번의 생을 이루는 배꽃은 이렇게 세 차례의 삶을 산다. 삶에 얼마나 깊은 애착을 품었길래 세 번의 생을 마주하며 이생에 머물기를 원했을까. 지독한 겨울을 힘들게 견뎌낸 까닭에 그리도 애착이 깊어진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험하고 힘든 겨울이라는 대상이 꿋꿋이 버티고 있기에, 봄을 맞은 배꽃이 더 곱게 그리고 더 의미 깊게 피어 있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바람이 몰아치며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버팀목이었던 나무에서 무참하게 떨어지는 하얀 꽃잎들. 아름답고 황홀했던 찰나는 참혹하게 사라지고 영구할 것 같던 행복은 덧없이 추락했다. 원래 삶이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올라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던가.     떨어진 꽃잎들은 삶의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가 없어 모두가 변한다는 화두를 던지며, 세상의 모든 일이 덧없음을 의미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임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보면 가녀린 꽃잎들은 자신의 몸을 빌어 처절한 삶의 무상함을 설파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떨어지는 꽃잎들은,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잊을 때마다 바람결에 메시지를 보내며 찰나의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듯도 싶다. 다른 눈으로 살피면 눈부신 꽃잎들은 생명체의 무상함을 세상에 보여주며,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려는 것도 같다.     추운 겨울이 지나 신선하고 희망찬 계절의 시작인 배꽃이 피어나는 봄이다. 하지만 어설픈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내 영혼에는 아직도 봄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나 내 가슴에도 따뜻하고 온화한 봄이 찾아오려나. 머지않은 미래에 내 혼에도 밝고 화창한 봄이 오기를,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린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배꽃 한동안 공중 봄볕 아래

2024-03-20

[이 아침에] 그래도 인간이 희망이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사람의 목숨이 질기다더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닐 때가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나는 5년 주기로 삶의 단락을 만든다. 5년 전의 나와 후의 나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 주기가 짧아져 3년 2년 1년, 결국은 하루하루가 되겠지만 진작에 살아왔기 때문에 달리 선택할 길은 없다. ‘그날의 걱정은 그날로 족하다’ 라고 하신 예수님 때문에 5년이 아닌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을 모조리 덜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너도나도 죽음이 목전에 있음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의료 관계자들의 노고를 잊을 수가 없다. 이승을 떠난 영혼의 난민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팬데믹에서 벗어나려는 즈음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팬데믹 보다 더 공포스러운 시대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치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온갖 악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팬데믹의 뒤풀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황당했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엔데믹을 선언한 지도 1년이 되어 간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의 5년을 한마디로 정의 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신뢰의 단절이 심해지고 공포는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래도 믿을 것은 인간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조차도 끔찍하다. 사람은 사랑이라는 양식을 먹으며 성장한다. 세상을 앞서 나가며 시대를 초월하는 것도 사랑이다. 소멸할 운명의 세상은 불완전을 메울 수가 없기에 생명을 대체할 우상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인간을 배제하려는 음모 또한 승리할 수가 없다. 세상을 지탱할 사랑과 양심 선함의 DNA 는 인간뿐이다.   최근의 대세는 인공지능(AI)이다. 말린다고 개발이 늦춰질 일은 아니겠지만 인공지능으로 인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편리함을 쫓느라 새로운 인공지능을 사들이는 소비자들은 그들의 피해 망상증을 대물림하는 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건강하고 명료한 정신을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세상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기가 힘들다고 해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신문을 읽는 수고만 해도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지적 능력을 유지하고 개발하는 방법이다.  과거에는 시니어층에 해당됐던 지적 편식이 이제는 다양한 연령층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자신이 읽고 싶은 것만 찾다가 그것마저 귀찮아서 밖의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5년 주기가 의미가 없어질 만큼 변화의 굴곡이 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변질의 악순환은 인간의 힘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신념 하나를 마음 안에 세우는 것이 절실하다. 하루하루를 창조적으로 사는 것, 굴복함이 없이 스스로 해방되는 것, 이런 멋진 삶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최경애 / 수필가이 아침에 희망 지적 편식 지적 능력 우크라이나 침략

2024-03-17

[이 아침에] 사별과 재혼

B 씨가 재혼했다고 한다. 그는 3년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고향 절친 M의 남편이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 회복하여 잘 지내던 그녀는 3년 전 췌장암이 발견된 후 병세가 급속히 나빠져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혼하지 않은 두 딸과 지내던 그가 작년 연말에 재혼했다는 소식은 M의 언니가 전해 주었다. B 씨의 재혼을 처가에서는 서운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배우자와 사별한 후 재혼을 하는 것은 여성보다 남성이 월등히 많은 것 같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사회성과 독립심이 강해지는 반면, 나이가 들수록 의식주를 아내에게 크게 의존하며 살던 남자는 결국 새로운 안식처를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별 후 언제 재혼을 하는 것이 적당한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런 기사가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남성은 평균 3.1년 만에 새 출발을 결심한 반면, 이혼한 남성은 평균 4년이 걸려 이혼보다는 사별 후 더 빨리 재혼을 하고, 여성은 사별보다는 이혼 후에 재혼을 서두르는 경향을 보였다. 이혼한 여성은 평균 4.2년, 사별한 여성은 평균 7.4년 걸려, 이혼한 여성이 사별한 여성보다 재혼 결심 기간이 3.2년이나 짧았다.”(한국경제)   B 씨의 재혼을 두고 처가에서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혼했다는 사실이나 시기보다는 결혼 소식을 알리는 방법 때문이었다. 아내 없는 처가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재혼 소식을 카톡으로 알려 왔다고 한다.     전후 사정은 모르면서 누구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B 씨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딸을 잃은 부모·형제에게 나는 이제 좋은 사람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들은 말인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던 사람일수록 사별 후에는 빨리 재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유인즉, 행복했던 만큼 슬픔과 상실감이 크며 이를 빠져나오기 위해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먼저 세상을 떠난 M도 B 씨의 재혼을 축하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직 중년이었던 B 씨의 재혼은 다들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0세 시대, 젊은 노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주변에는 사별로 혼자된 노인들도 많다. 과연 이들의 재혼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2022년 기준, 한국 여자의 기대수명은 85.6세로 남자의 79.9세에 비해 5.7년이나 길다. 게다가 아내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10 수년은 더 살 것이다. 나 없는 세상 혼자 외롭게 살기보다는 괜찮은 남자 하나 사귀어도 나는 괜찮다.     가을이면 나무에 가지치기를 해주고, 거름도 주고, 뒷동산 죽은 해바라기를 뽑아 정리하고, 봄이 되면 아내와 텃밭을 갈아 채소를 심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도 가고, 아내가 끓인 육개장을 게걸스럽게 먹어주고, 기일이면 막걸리 한 병 들고 아내와 함께 내 산소를 찾아주는 그런 남자 친구라면 좋겠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사별과 재혼 사별과 재혼 재혼 소식 재혼 결심

2024-03-13

[이 아침에] 지혜를 얻게 한 용기

DMV(가주차량등록국)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사고나 교통 위반 티켓을 받은 적이 없어 이번에도 필기시험 없어 재발급 받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70세가 넘으면 무사고 운전자라도 필기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스트레스가 시작됐다.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고 깜빡깜빡하는 건망증까지 심해지는 상황인데 시험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용기를 내어 응시할 것인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순간 ‘용기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죽기 살기로 노력해 보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리고 마치 비상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200개가 넘는 예상 문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력이 떨어진 탓인지 아무리 운전면허 시험이지만 쉽지가 않았다.   시험 당일  DMV에 도착해 차례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대기자 대부분이 시니어들이었다. 이미 시험장에 들어가 시험을 치르는 사람 대부분도 시니어였다. 시험 시간에 제한이 없다 보니 시니어들은 시험지를 붙들고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시니어 응시자들의 시험 시간은 한두 시간이 보통이었다. 빈자리가 빨리 나지 않아 다음 순서의 사람들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내 이름이 호명됐다. 교통 표지판에 관한 1차 시험은 컴퓨터로 보는 것이 먼저였기에 몹시 긴장됐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문제 하나하나에 답을 체크하며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을 끝내자 바로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자가 떴다. 안도의 숨을 쉬며 2차 필기시험에 응했다.   교통정보에 관한 문항 40개가 있는 시험지였다. 막상 시험지를 앞에 놓고 보니 다행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일단 답을 알고 있는 문항부터 풀어나갔다. 답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제쳐 놓았던 문제들은 다시 정독하며 기억을 더듬으며 겨우겨우 답을 체크했다. 그리고 모든 문항에 답을 체크했는지 한번 쭉 흩어보는 것으로 마지막 점검을 했다. 모르는 문항은 아무리 읽어도 답하기 어려움을 알기에 시간 낭비 없이 시험지를 제출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사했던 직원이 내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주눅 든 모습으로 다가섰더니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유 패스”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합격이란 말을 듣는 순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은혜임에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는 고마움과 감동이 폭발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험은 생존을 위한 숙명이 아닌가 싶다.  운전면허 시험은 어떤 일에도 용기를 갖고 달려들면 해낼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지혜를 터득하는 기회였다.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지혜 용기 시험 시간 운전면허 시험 시니어 응시자들

2024-03-12

[이 아침에] 그는 어디로 갔을까

춘삼월에 때아닌 폭우가 퍼붓다니. 남가주엔 겨울에 비가 오는데 말이다. 며칠 전, 밤에는 홍수가 날 거라고 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큰일이다. 공원 주차장 쓰레기통 옆에 텐트를 친 노숙자는 어딘가 비를 피해 갈 곳이라도 있는지 걱정이다.   내가 속한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은 매일 아침 LA한인타운 내 샤토 공원에 모여 운동을 한다. 차를 주차하고 공원 쪽으로 걸을라치면 커다란 상업용 쓰레기통 2개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에 모습을 숨긴 보호색의 텐트 하나.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쓰레기통과 같은 어두운 색깔의 텐트는 쓰레기통과 비슷한 키에 통통한 사이즈로 2인용이다.     그 텐트의 주인과 가끔 얼굴이 마주칠 때면 가볍게 미소를 띠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다 보니, 가까운 이웃처럼 느껴진다. 몇 차례 현금도 건네고 한 번은 구운 맥반석 계란 대여섯 개를 신문 겹겹이 싸서 텐트에 넣어 주고 일어서는데 잠깐 기다리란다. 불편한 자세로 엉거주춤 서서 몇 초인가 기다렸다.   뭔가를 말없이 내민다. 나 주는 거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눈으로만 스캔했더니 팔찌인 듯싶다. 환하게 웃어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시계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며 양손 손목을 털어 보여줬다. 히스패닉인지 영어가 서툴다. 그래도 알아듣는 듯 소통엔 별문제 없다. 그래도 주고 싶은 듯 몇 번을 더 권한다. 더 환하게 웃어주며 더 강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내 평생에 누구에게서도 받아 본 적 없는 장신구 선물이다.   내게 장신구란 고작 결혼반지가 전부다. 그마저도 안 낀다. 불편해서 싫다. 그런 탓에 남편에게서조차 못 받아 본 종류의 선물이다. 너무 확고하게 거부하는 반응에 이내 텐트 안으로 숨는다. 그리곤 나도 그곳을 떠나 집으로 향한다.   온정을 베푸는 자의 입장에선, 받을 상대가 남자다 여자다 혹은 젊었다 늙었다란 개념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적어도 난 그렇다. 오로지 부족한 사람이니 나누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젊은 남자라 해서, 넌 나가면 노동이라도 해서 먹고 살 수는 있을 텐데,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구걸 질을 하느냐고 질타할 맘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였다. 젊은 외국인 남자 노숙자로부터 장신구를 선물로 받게 되는 상황에 당황 했던 거다.     그 후론 매일 아침 운동 가는 길이 불편해졌다. 어쩌다 또 얼굴 마주칠까 살피며 다닌다. 그러다 며칠 계속된 폭우로 마침내 그 텐트가 사라지고 없다. 걱정이 앞선다.   덩치 큰 쓰레기통 2개가 날마다 내 앞을 막아서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쫓아 버린 거 절대 아니거든. 비좁은 대로 우리 둘 옆에 텐트 칠 스페이스는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계속 경찰차가 왔어. 권총도 차고 기다란 방망이도 차고 있던걸. 폴리스 아저씨의 말투는 단호했어. 빨리 어디론가 가라고 다그치는 눈치였어. 노숙자들끼리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좋은 집이라고 그러던데. 그래서 이사 간 거야. 걱정하지 마. 어디로 잘 갔겠지. 노기제 / 수필가이 아침에 상업용 쓰레기통 쓰레기통 2개 공원 주차장

2024-03-06

[이 아침에] 개 짖는 소리

몇 년 전 이사 온 옆집은 셰퍼드를 키운다. TV에서 마약 탐지견으로 일하는 저먼 셰퍼드를 떠올리며 좋은 품종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옆집에 이런 맹견이 있으니, 도둑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순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와 쫑긋 선 귀와 억센 근육을 가진 녀석은 허우대가 멀쩡하게 생겼고 주인 말에 잘 복종했다.     이런 첫인상은 이사 온 지 이틀 만에 부서졌다. 개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른 개에 대한 방어 본능으로 짖는다고 들었다. 아직도 우리에게 털을 곤두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짖는 것을 보면, 단순한 경고나 방어 본능이 아닌 경계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닐지 싶다. 시끄럽고 소란한 개 짖는 소리를 옆집에 항의를 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하긴 어떻게 시도 때도 없이 컹컹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랴.     목줄 없이 뒷마당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지만,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이름은 있으나 50파운드가 넘는 대형견을 주인은 ‘도그’라고 부른다. 사이렌 소리가 나면 짙은 하울링을 하고, 가끔 하늘을 보고 짖는다. 날아가는 새가 심기를 건드렸는지, 아니면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배회하고 싶어선지도 모른다.     몇 사람이 훈련 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로 더 심하게 사람을 경계하는 녀석을 보면 ‘인빅터스(Invictus)’가 연상된다. 정복되지 않는 자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윌리엄 E. 헨리의 시 ‘인빅터스’처럼 개는 좀처럼 길드는 것을 싫어했다. 오직 주인에게만 순종한다.     우리가 수영장 청소하는 날에 이웃집에서는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다. 양쪽 집에서 인기척과 물건 옮기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자, 흥분한 개가 두 집을 향해 짖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상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담장 철망 사이로 보니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녀석이 공중제비를 돌면서 내는 소리였다. 셰퍼드가 그렇게 높이 뛰는 것을 처음 봤다.   하루는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집 사이드 게이트 쪽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우리 집까지 자기 영토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그걸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작은 철문을 사이에 두고 하나는 안에서 하나는 밖에서 으르렁댔다. 놀란 강아지 주인이 얼른 댕댕이를 안고 갔다. 분이 풀리지 않은 개는 주인이 나와 케이지에 가둬둘 때까지 계속 짖어댔다. 녀석은 케이지 안에서만 짖지 않았다.   친구와 전화하는데 녀석이 또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펜스 위에 앉아서 세수하는 고양이를 봤는지 정신없이 짖어댔다.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걸까?’라고 물었다. 친구 왈. ‘뭘 신경 쓰니, 개소리에’.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소리 사이렌 소리 저먼 셰퍼드 방어 본능

2024-03-05

[이 아침에]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한 할머니가 길을 가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같이 가, 처녀!” 자신을 처녀라고 부르는 말에 당황해서 뒤돌아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내심 흐뭇했다.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가슴도 두근거렸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자랑스레 말했다. “뒷모습만 보면 내가 아직 아가씨 같은가 봐. 길에서 처녀라고 부르며 따라오는 사람이 다 있더라고.”   남편은 할머니에게 내일은 보청기를 꼭 하고 나가라고 했다. 다음 날 할머니는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보청기의 도움으로 정확하게 들리는 남자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이라는 생선 노점상의 외침을 ‘같이 가 처녀!’라고 잘못 들었던 것이다.     나이 들면서 청력을 잃어가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슬픈 현실을 유머로 승화시킨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다. 초고령화 시대로 치닫고 있는 일본에서 이런 이야기만 모은 책이 나왔다. ‘센류’라는 17개 음으로 된 짧은 정형시 형식에 노인들의 체험에서 나온 위트와 풍자를 담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시들이 실렸다.   ‘종이랑 펜 / 찾는 사이에 / 쓸 말 까먹네’ ‘개찰구 안 열려 / 확인하니 / 진찰권’ ‘세 시간이나 / 기다렸다 들은 병명 / 노환입니다’ ‘일어나긴 했는데 / 잘 때까지 딱히 / 할 일이 없다’ ‘(요전에 말이야) / 이렇게 운을 뗀 / 오십 년 전 이야기’ ‘만보기 숫자 / 절반 이상이 / 물건 찾기’ ‘미련은 없다 / 말해놓고 지진 나자 / 제일 먼저 줄행랑’ ‘이 나이쯤 되면 / 재채기 한 번에도 / 목숨을 건다’   일본의 ‘전국 유료 실버타운협회’ 주최로 2001년부터 매년 열리는 센류 공모전에 응모한 11만 편의 센류 중에서 엄선된 88편을 모아 만든 이 책이 100만 부 가까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책에 담긴 시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여겼다는 뜻이다.   책에 수록된 시 중에서 하나가 제목이 되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 책 제목이다. 심장이 뛰길래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었다는 허무한 결말에 나이 듦의 서러움마저 전해진다. 책에 담긴 익살맞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까닭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내 주위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면 밥 한 끼 사 먹을 돈은 있는데, 계산서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애를 먹는다. 시계가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고민하다 손목에 고스란히 매달린 것을 보고 안심하는 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또 다른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슨 말을 하려다 잊어버린 채 멍하니 서 있을 때면 나도 그 책에 시 한 편 응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렇게 나이 드는 게 인생이라면 조금은 유쾌하게 사는 비결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가 점점 더 많아지더라도, 깜빡거리는 정도가 심해지고 그 횟수가 잦아질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존재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고 안타까워하기보다 부정맥일지라도 심장이 뛰고 있음에 감사하며 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부정맥 사랑 처녀 시절 정형시 형식 생선 노점상

2024-02-28

[이 아침에] 칠순에 졸업장을 받다

육 학년 칠 반에 입학했다. 가슴에 손수건을 단 아이처럼 설레며 컴퓨터를 열었다. 이국땅에서 50여 년이 지나서야 단발머리 문학소녀의 꿈을 찾았다. 뒤늦게 시작한 탓에 은퇴 후 늦깎이 학생이 되었다.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에 대한 초석을 닦았다. 문학사와 시, 수필, 아동문학, 소설, 희곡, 논술과 독서지도까지 섭렵하며 새벽잠을 깨웠다. 많은 책을 읽고 감상 리포트를 쓰며 몰두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쓴 시, 동화, 소설을 학과 게시판에 올리면 학우들이 읽고 자신의 소견이나 평을 써 올렸다. 그 후 실시간 줌으로 교수님과 함께 합평 시간을 가졌다. 합평을 들은 후 교정하고 퇴고한 글을 다시 제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을는지.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묵은 뇌를 새롭게 하여(renew) 한결 젊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태평양을 건너 온라인 수업을 통해 한국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장소와 시차를 극복하며 공부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졸업이란 학생이 학교 규정에 따른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친다는 의미다. 나 또한 졸업이라는 과정을 통과했다.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서울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기대로 부풀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쏟아지는 함박눈이 내 앞길을 축복해주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선 대학의 좁은 문을 통과해 넓은 학문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열망으로 차 있었다. 교육대학 문을 나설 땐 긴장했다. 교육 현장에 나가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먼저 유아교육(Early Child Development) 과정을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커뮤니티 2세 교육의 뜻을 펼치고자 어린이학교를 설립해 30년간 운영했다. 해마다 졸업식을 성대하게 준비했다. 그들의 성장과 활동을 담은 앨범을 제작하고 트로피를 수여하며 마음껏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축하객 없는 졸업식을 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어 식장을 정성껏 마련했다. 졸업생 한 사람씩 순서를 진행하며 학교 문을 내보내야 했다. 마스크 속에서 안아줄 수도 없는 서운함을 남긴 채. 그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평생 해오던 일을 내려놓으며 은퇴했다.   내 나이 칠십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학점을 이수함으로 졸업이라는 문에 이르렀다. 돋보기 속 아픈 눈을 비비며 책장을 넘겼다. 새벽 3시에 열리는 실시간 합평 세미나를 위해 밤잠을 설치는 어려움을 겪었다. 형설의 공을 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 ‘해냈구나! 잘했다!’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길 원했다. 졸업장에 금테를 두르는 걸로 대신할까?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나를 위한 졸업 축하 카드를 만들어 보았다.   졸업을 한 단계에서 할 몫을 다 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남기고 싶다. 남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출발로 다가온다. 이제 배운 이론과 실기를 좋은 글쓰기에 적용할 터.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오직 내가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졸업장 칠순 고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졸업식 서울 중학교로

2024-02-22

[이 아침에] 비 오는 날의 일기

겨울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산타아나 강둑을 걷는다. 빗방울 소리가 부드럽다. 비닐우산 위에 떨어지던 다급하고 신산한 소리가 아니다. 그새 꽤 멀리 오긴 온 모양이다.   빗줄기가 강해진다. 바람도 덩달아 날뛰기 시작한다. 오래전 산티아고 길을 걷던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 진흙탕 길을 걷는데 한 발 옮겨놓기가 힘이 들었다. 비바람에 우장이 찢겨 나가고 신발은 물이 질컥거렸다. 춥고 배가 고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전거를 메고 들고 흙탕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길게 이어졌다. 쏟아지는 빗속을 한 발 한 발 말없이 걸어가는 인간의 행렬은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였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저 고생을 하며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또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살다 보면 비바람 치는 날을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날 눈보라가 몰려오고 천둥 번개가 번쩍인다면 기회가 멀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날씨가 항상 좋으면 사막이 된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 눈썹부터 꼼꼼히 늙어가는 거울 속 내가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웃는다. 책장으로 둘러싸인 내 방에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네 평 남짓 작은 방이다. 새 책의 첫 장을 넘긴다. 내 세상이 한 뼘씩이라도 넓어져 가면 좋겠다.     밤이 깊어간다. 어둠은 세상을 낳는다. 새를 낳고 꽃을 낳고 나무를 기른다. 사람도 기른다. 깜깜한 밤, 자리에 누워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다. 전기선을 울리며 지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무섭다. 살점이라도 떼어갈 것 같다. 투두두둑 지붕을 쓸어가는 빗방울 소리가 울린다. 홈통을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어보니 적잖이 오는 모양이다. 높은 곳은 저 비가 눈이 되어 내리겠다. 이 춥고 으스스한 시간, 뒷마당을 드나들던 토끼들은 옹기종기 제집에 나처럼 옹송거리며 숨어있겠지. 다리 밑 홈리스들은 이 밤을 어떻게 지낼까. 저녁이나 제대로 먹었을까.     태풍이 불어오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가슴도 태풍이 휩쓸어 갈 때가 있다. 예고도 없이 벼락이 치고 자락비가 쏟아지듯, 견딜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밤새도록 온몸을 흔들어 댈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 혹은 몇 번씩 겪어내야 하는 일이다.     슬픔에 섬처럼 잠겨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는 어쩔 수 없는 그때야 하느님을 찾는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그 분을 생각하면 나에게 평온이 깃든다. 전지전능하신 당신이 잘잘못을 판단하여 다 해결해 주겠다는데 내가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오늘 어떤 이로부터 들었던 말들을 생각해본다. 스치듯 지나며 그가 던진 한마디가 고맙고 눈물겹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인다. 말의 한계는 생각의 한계라 했다. 말은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다. 나는 오늘 허툰 말로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곰곰 되뇌어본다.    오늘 읽었던 성서의 욥기 구절. ‘인생은 베틀의 북처럼 빠르다’ 는 말이 떠오른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일기 빗방울 소리 오래전 산티아고 산타아나 강둑

2024-02-1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