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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대륙횡단열차는 아직도 달린다

대륙횡단열차는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브리지 건너 에머리빌에서 아침 일찍 뉴욕으로 출발했다.     항공기와 자동차에 밀렸지만 150여 년 연륜의 철도시스템은 여전히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륙횡단 열차는 1869년 완공됐다. 공식적으로 ‘태평양 철도(Pacific Railroad)’ 혹은 ‘육로(Overland Route)’라 불렸다.     대륙횡단철도는 미국의 사회와 경제 발전에 일대 전환점을 제공했다. 철도 완공으로 동부 연안에서 서부 연안 도시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에서 2주일로 줄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내다본 열차 차창 밖으로는 물안개 밑에서 바다 물결이 진저리를 쳐대고 있었다. 높은 건물의 꼭대기와 다리의 난간, 허리에 구름을 감은 산들이 안개 틈으로 들락날락 신비스러웠다.     샌프란시스코만 지역 특유의 아침 안개를 벗어나 머린 카운티로 접어들자 빛은 해변의 빼어난 정취들에 내려앉아 평화로움과 세련미를 선명하게 전해주었다.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맑고, 바다는 비취 빛깔로 깊었으며, 초록의 야산 기슭에는 모양을 낸 주택들이 관상수에 둘러싸여 오가는 선박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차가 경적을 울리며 내륙으로 들어가 농축산학의 메카 데이비스와 캘리포니아 주도 새크라멘토 일대의 평원을 지날 때는 포도와 오렌지, 아보카도의 과수원, 채소밭의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푸르렀다.   리노를 지나 네바다의 사막에 접어들자 빛은 표변했다. 황무지에 펼쳐진 모래와 돌, 바위산, 널브러진 나목들의 주검 위에 살기가 등등했다. 그 넓은 광야에 땡볕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물은 보이지 않았다.     척박한 땅 황량한 무덤 더미는 유타 주까지 이어졌다. 4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는 주상절리도 펄펄 끓는 고열에 의한 조형물이리라. ‘철도 건설 현장에서 희생된 유골들도 필경 저기에 묻혀 있겠지’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지시로 6년 동안 시공된 3000km에 달하는 대역사의 상처였다. 인디언 원주민들은 보호구역에 유폐되거나, 저항하다가 처형됐다. 당시 연방 정부는  청나라에서 유입된 2만여 명의 중국인 노무자들도 열악한 작업환경을 견디다 못해 수없이 스러졌다고 전해진다. 해머와 징으로만 화강암을 하루에 1피트씩 뚫어 16개의 터널도 팠다고 하니 그 고역이 애련하기가 그지없었다. 획기적인 철도 건설로 미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한 중국 노동자들은 거꾸로 피해자가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공사가 마무리된 후 1870년대부터 미국에 남은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철도는 인종차별의 발현 시점이기도 했다.     솔트레이크 시티를 지나자 태양은 서쪽 바위산 너머로 잠자러 가면서 휘황찬란한 빛깔의 비단으로 온누리를 덮어주었다. 천지가 저렇게 아름답게 물들다니! 장엄한 송별 의식일까, 위로일까.   깜빡 든 잠에서 깨니 창밖이 훤했다. 로키산맥의 중턱을 내려가고 있었다. 울창한 교목들과 굽이굽이 휘도는 코로라도 강의 푸른 물결, 날아다니는 새들이 반가워 온몸에 활기가 솟았다. 빛의 바닷속에서 동물들은 마냥 자유로웠고, 나무들도 반짝이며 살랑거렸다.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와 앞으로 달려가는 세상이 그토록 고마울 줄이야.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대륙횡단열차 대륙횡단 열차 열차 차창 서쪽 바위산

2025-01-15

[이 아침에] 울면서 쓴 글, 독자도 울면서 읽는다

지난해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평소라면 더 큰 관심을 받았을 텐데 어수선한 본국 분위기 속에 특별한 소식이 묻혀버린 성싶어 아쉽다.   한국어로 진행된 작가의 수상 연설을 들었다. 한국문학이 변방 문학이 아닌 세계 주류문학으로 진입하게 된 현장을 지켜보면서 가슴 뿌듯했다. 노벨상 수상 작품을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되다니, 기쁘고 고맙다.   작가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여덟 살 때 쓴 자작시를 언급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가슴과 가슴 사이를 이어주는 금실이지”   이어서 그의 작품을 열거해 가면서 각각의 작품에 담긴 주제를 소개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인간임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렇지만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등을 담아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와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소설”이라고 밝혔다. 국가를 넘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맞서 대항하는 인간의 본성, 인간 내면의 깊은 상처를 응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과 위대함까지도 밝혀주는 작가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터이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딸의 문장이 “섬세하고 아름답고 슬프다”고 말했다. 사람은 부모를 닮아 태어나지만 낳고 자란 산천을 닮게 마련이라 했다. 한강은 두 면을 모두 닮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한강은 유명 소설가인 아버지를 두었고, 그녀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광주가 그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믿어지기 때문이다.   문학은 무엇일까. 도대체 문학이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글을 쓰고 읽고, 또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일까.   작가 한강은 인터뷰를 통해 “문학이란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라고 했다. 또 “사람들은 문학을 접하면서 이런 행위를 거듭하고, 이런 행위의 거듭함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정을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을 생기게 한다”고 했다. 따라서 “문학은 여분의 것, 잉여된 것, 추가된 것, 불필요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은 우리 삶을 안내하는 지도이자 나침반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작가는 곡비(哭婢)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 다른 존재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 앓아주고 견뎌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울면서 쓴 글은 독자가 울면서 읽게 된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쓴 글은 독자가 가슴앓이를 하며 읽게 마련이다. 한강은 여덟 살 적 자작시에서 ‘사랑이란 가슴과 가슴 사이를 이어주는 금실’이라고 갈파했다. 언어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실이다. 팔딱팔딱 뛰는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이 금실을 타고 멀리 멀리 번져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 한강, 그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었다. 기대가 크다. 정찬열 / 시인이 아침에 독자도 세계 주류문학 노벨 문학상 변방 문학

2025-01-14

[이 아침에] 아저씨의 칠순 잔치

동갑내기 아저씨의 칠순 잔치에 다녀왔다. 칠순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는가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환갑은 만 나이 60세에 하는 것이고, 칠순이나 팔순은 한국식 나이 70과 80이라고 한다.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되며 칠순을 만 나이로 따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내가 기억하는 큰 잔치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환갑잔치다. 외할아버지 때는 이틀 전부터 전을 부치고 음식을 장만해 크게 상을 차려 잔을 올렸다. 자식들이 잔을 올릴 때 중년의 여인이 곁에서 소리를 했고, 하루 종일 손님들이 오갔다.   어머니의 환갑잔치는 타운의 중식당에서 했는데, 꽤 많은 손님이 왔었다. 그때도 상을 차려 잔을 올렸는데, 할아버지 때와는 달리 상에 오른 한과가 장식용이었다. 나와 형제들이 어머님 은혜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드렸고, 노래방 기계를 틀어 몇몇 하객이 노래를 불렀다.   아저씨는 칠순 잔치를 하겠다고 진작부터 공언했었다. 칠십 평생 살아오며 자신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45년 이민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잔치다.   파티 장소에 가니 곱게 차려입은 아저씨와 숙모, 아들과 딸 가족이 우리를 반긴다. 친인척, 동창, 교우, 자녀의 친구 등 100여 명의 하객이 모였는데, 멀리 버지니아와 한국에서 온 손님들도 있었다.   아저씨는 45년 전 미국에 와, 불법체류자로 힘든 시절을 보내며 자수성가한 아메리칸드림의 산 증인이다. 굳이 촌수를 따지자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6촌 동생, 내게는 7촌 당숙이다. 하지만 친척이 귀한 실향민들이라 우리에게는 가까운 친척이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내게는 형과 같은 존재다. 아저씨의 등에 업혀 난생처음 동대문 야구장에 가서 고교야구를 보았다. 낙산 해수욕장에 가서 바다를 본 것도 그의 덕이다. 그의 등에 업혀 바다에 들어갔고, 모래사장에 앉아 별을 보며 그가 치는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2년 전에 칠순이 지났다는 선배들이 나와 오중창을 부르고, 손자 손녀들이 준비한 영상인사가 돌아가고, 한국에서 온 손님의 노래와 클라리넷 연주, 그리고 이어진 노래방으로 분위기는 고조됐다. 참석한 하객들이 잘 먹고 즐겁게 놀아주기를 바라던 아저씨의 배려 덕에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돈과 명예는 살기 위한 수단일 뿐, 삶이란 결국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엮이며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한평생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지나온 삶을 추억하고 감사를 나누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티의 즐거운 여흥보다 더 좋았던 것은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들, 서로를 잘 모르던 2, 3세대들이 서로 친해지는 모습이었다. 잔치를 준비한 아저씨가 바란 것이 바로 이런 점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의 후손들이 서로를 알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   그동안 칠순이나 팔순 잔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세월 지나 먹은 나이 뭐 대단하다고 잔치까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잔치를 보며 다소 생각이 바뀌었다. 심적, 재정적으로 여유가 된다면, 이런 잔치도 할만하다.   아저씨, 멋진 잔치였습니다. 10년 후 팔순 잔치가 기대됩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식구들이 모이겠지요?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아저씨 칠순 칠순 잔치 칠순 나이 동갑내기 아저씨

2025-01-13

[이 아침에] 태양을 품은 뱀을 펼쳐보며

올해는 을사년 뱀의 해이다. ‘을(乙)’은 푸른색을 상징하므로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뱀은 12간지 동물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은 아니다. 오히려 무섭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실제로 우리집엔 안창홍 화백의 ‘태양을 품은 뱀’ 이라는 제목의 1989년도 판화가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정집에 있던 그림을 동생들과 나눌 때 내 몫의 그림 속에 끼어 왔다. 미국에 가져와서는 으스스해서 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권과 문학 속에서 뱀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먼저 뱀은 겨울잠을 자고 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여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위키백과에 따르면 뱀은 집안의 곳간과 재산을 지키는 가신이나 업신으로 불리며 살림을 늘게 해주고 집을 지켜준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뱀은 ‘지혜’와 ‘치유’를 상징한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항상 들고 다닌 뱀이 똬리를 튼 지팡이에서 기원한다.   신화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가 환자를 치료하던 중 갑자기 뱀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서 지팡이를 휘둘러 뱀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와 죽은 뱀을 살리는 것을 보고 그도 그 약초로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그후 그는 뱀의 치료적 영험을 상징하는 뱀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뱀은 고대부터 치유의 약초를 찾아내는 현명함과 재생의 힘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였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로고에도 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뱀의 해’ 라기에 서재 책장 서랍에 둔 그 뱀 그림이 생각났다. 당시에 전도 유망한 젊은 화가의 그림이라고 아버지의 설명을 들었던 터였다. 구글링해보니 36년 세월 사이 꾸준히 활동하셔서 독창적 장르를 개척하신 우뚝 서신 분이 되셨다. 노력한 시간이 준 선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365개의 새 날을 하늘의 선물로 받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들이다. 365개의 날 중엔 슬픔과 좌절의 날도 기쁨과 희망의 날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성경에는 365번의 ‘염려하지 말라’가 써 있다니 인생살이는 매일 근심을 안고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고금을 막론하여 남들도 그러하다는 말인 듯싶어 크게 위로가 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며 늘 자신에 차 있던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후 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되어 그곳에서 최후를 맞을 때 그는 참담해하며 “어느 날 마주칠 불행은 언젠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라고 탄식했다. 나폴레옹조차도 피해가지 못한 시간의 보복.   뭔가를 해야할 때를 놓치는 것은 시간의 보복을 잉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작년과 같은 해가 뜨고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어제를 이기는 오늘을 만들어가야겠다.   재산과 곳간을 지켜준다는 뱀 그림을 벽에 걸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세상적 욕심 앞에선 뱀의 흉물스러움도 다 용서가 될 듯한 아이러니라니.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태양 곳간과 재산 아프리카 세인트헬레나 치료적 영험

2025-01-12

[이 아침에] ‘아보하’를 누리는 새해가 되길

밸리에 삽니다. 하루는 코리아타운에 가려고 프리웨이를 탔습니다. 습관대로 앞차를 따라가며 운전하는데, 늘 보던 주위 환경이 왠지 낯설어 보였습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삼십 년을 지나다닌 길인데. ‘그래. 익숙했던 풍경도 때론 낯설게 보일 수도 있어’라고 위로하며,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깨달았죠. 길을 잘못 들은 것을. 118번 프리웨이에서 5번 사우스로 갈아타야 하는 데 405번 사우스를 탄 것입니다. 이런 날도 지나고 보니, 여태껏 살아온 날 중의 하나였습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뽑은 2018년 키워드는 ‘소확행’이었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개인적으로 ‘소확행’을 좋아했습니다. 그 단체는 2025년 키워드 중의 하나로 ‘아보하’를 선정했습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내일이 불안한 시대에서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 오늘을 사는 것이 기적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해도 괜찮으냐는 물음에, 그래도 괜찮다는 대답이겠죠. ‘아보하’는 평범한 날도 나쁘지 않다는 위로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아보하’가 주는 평온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딸들이 어렸을 때는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어요. 아이들이 어서 자라서 저 혼자 걸어다니고, 스스로 숟가락질해서 먹고, 혼자 옷 입고 신발 신고, 아이스크림 흘리지 않고 먹어서, 닦아주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죠. 그리고, 그런 날이 왔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더는 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끔 그때가 그립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아서 지루했던 그 ‘아보하’가.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늘 특별할 수는 없겠지요. 오히려 지금은 멋진 한순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에 만족합니다. 여행 가서도 유명한 맛집에서 먹는 한 끼 식사보다, 온 가족이 호텔 방의 커피 메이커에서 빼어낸 뜨거운 물로 만들어 먹던 덜 익은 컵라면이 더 좋습니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아보하’를 제대로 즐기려 합니다.   김종서가 부른 ‘아름다운 구속’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워’.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에는 살아있는 오늘이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이기를 기원합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가끔 좋은 일이, 밤나무에서 잘 익은 밤이 툭툭 떨어지듯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누리 새해 트렌드 코리아 커피 메이커 주위 환경

2025-01-02

[이 아침에] 안타까운 무안국제공항 참사

올해도 다 저물어 가는 연말 12월29일 오전 9시7분경 제주항공 여객기가 랜딩기어 고장으로 무안국제공항에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가 공항 외벽을 들이박고 폭발했다. 치솟는 불길 속에 탑승객 175명 승무원 6명이 갇혔다. 뒤꼬리 부분에 탔던 승무원 2명만 생존하고 전원 사망이라는 엄청난 비보를 접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보았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귀하고 귀한 생명이 한꺼번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유가족의 슬픔은 오죽하겠는가. 비명에 횡사한 이들 가운데는 팔순을 맞이한 할머니와 딸과 사위, 외손자, 손녀들까지 모두 9명의 일가족이 여행을 다녀오다 참변을 당했다. 또 어떤 젊은 약혼자와 약혼녀는 3월에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떠났다가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승객들…. 어떻게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남은 유가족의 비통함은 오죽하랴.   사고 당시의 상황을 이렇다고 한다.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즉 새들이 엔진에 빨려들어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모든 기기가 연달아 고장을 일으켜 ‘랜딩기어(landing gear)’가 내려오지 않아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가 속력을 줄일 수 없어 활주로를 이탈하여 공항 외벽을 들이받았다고 한다.   물론 블랙박스와 항공기록일지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사고원인 규명을 하겠지만, 나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 기장이 활주로 말고 다른 곳으로 착륙을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체슬리 ‘설리’ 셀렌버거 기장을 떠올렸다. 그가 몰던 항공기도 새 때의 습격을 받아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는 현명한 판단으로 뉴욕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하여 탑승객 전원을 살릴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월15일 뉴욕 허드슨강에 US 항공기 1549편이 불시착해 155명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는 기적에 온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렌버거 기장은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해 샬롯테 더글러스 국제공항을 향해 비행 중이었다. 이륙한 지 얼마 안 되어 거위 떼들이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 엔진으로 빨려들면서 엔진에 불이 나 엔진이 멈춰 버렸다. 순간 기장은 이륙한 공항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혹은 가장 가까운 테터보로(Teterboro) 공항에 착륙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고도가 너무 낮아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비상착륙 할 때까지 3분28초가 걸렸고 탑승객 전원이 24분 만에 구조될 수 있었다. 기장은 탑승객 전원이 비상 구명보트에 탈 때까지 끝까지 비행기 안에 남아 진두지휘하고 맨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무안국제공항은 바다에 가깝다고 했다. 비상착륙지를 바다로 선택했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나 안타까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손녀 딸이 유나이티드 항공 승무원으로 근무 중이다. 사고당하지 않도록 늘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수영 / 수필가이 아침에 무안국제공항 참사 비행기 기장 탑승객 전원 엔진 고장

2024-12-30

[이 아침에] 너 몇 살이니?

며칠 전 소그룹의 연말 모임을 하려고 일식 뷔페에서 모였다. 특별히 수요일엔 10% 시니어 디스카운트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수요일로 잡았다. 그래봐야 2불 남짓 절약이지만, 연금 받는 은퇴자의 사는 방법으로 합당하다 생각했다.   나와 띠동갑 위인 팔순 넘으신 멋쟁이 선배님이 조금 늦게 오셨다. 입구에서 계산하지 않고 직진해서 우리들이 모여 앉은 곳으로 와서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도우미 청년이 선배님의 밥값 계산서를 가져왔다. 일반 어른요금이 찍혔기에 시니어 할인으로 계산해 달라고 요청했다.   젊은 도우미가 선배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How old are you?” 하는 바람에 모두 웃었다.   블루진 상하의에 모자를 쓰셔서 젊어 보였나 보다. 그 원초적인 질문은 적어도 65세 이하로 보인다는 말과도 통하므로 다음 모임의 밥값은 선배님이 쏘시기로 했다. 기분 좋은 착각이 아닌가.   큰수술 후 머리가 하얗게 센 나는, 염색약이 신장 이식 환자에겐 안 좋다기에 흰머리로 산 지 오래다. 머리칼 때문에라도 나이보다 훨씬 많게 보는 이들이 있다.     가끔은 남편을 아들로 보니 난감하기도 하다. 옆에서 내 수발을 드는 남편을 보고 “착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하고 염장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모르고 한 소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편이 젊어 보이는 편도 아니기에 억울하다. 그런 내게 “너 몇 살이니?” 했다면 골든벨이라도 울릴 작정인데 그럴 리 없는 현실이 아쉽다.   맥도널드의 커피를 사러 드라이브 스루로 갔더니 말 안 해도 시니어 값 받는다고 “대박!”이라며 좋아하던 때도 있었건만, 이젠 나이만큼만 봐줘도 만족하겠다.     생일이 12월이라 평생 억울하게 애먼 한 살을 더 먹었다. 올 봄 여고 동창들이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모인다며 별칭 칠순 합동잔치라고 했다. 그 칠순이란 말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다. 나는 아직 칠순이 아니라고! 공연히 꼬장 부리느라 가기 싫었다. 심술이 살아있는 걸 보면 아직 젊은가 보다.   고희는 당나라 두보의 시에 나오는 ‘人生七十古來稀(인생 칠십 고래희)’의 줄임말이다. ‘삶에 있어 칠십도 드문 일이다’라는 뜻인데, 평균수명이 늘어난 작금엔 칠순을 넘겨 사는 이가 대부분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그것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한 데서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한 것이 7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줄여서 종심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종심은 고희 및 칠순과 동의어이다.   나는 만으로 70세가 되는 해의 생일을 칠순으로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70세 생일은 망팔(望八)이라고도 했다던데 이건 고희보다 더 싫다. 일 년 더 있다가 종심 하겠다! 쓰다 보니 나이 자랑했다. 이를 어째.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종심소욕 불유구 종심소욕 부유구 밥값 계산서

2024-12-23

[이 아침에] 이웃사촌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차고를 마침내 수리하기로 했다. 단열재를 넣어 벽을 치고, 위도 막고, 선반을 매고, 조명과 팬을 달기로 했다.     그동안 살면서 당장 필요하진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들을 하나둘씩 차고로 보내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 공사를 이틀 앞둔 주말 오후, 아내가 물건을 정리한다고 차고에 들어갔다. 별 진전 없이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교우 J씨 부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이 힘을 보태 아내의 캔버스를 비롯한 책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다루면 자칫 망가질 수 있는 물건들을 페티오로 옮겼다. 저녁을 먹고는 D씨 부부가 와서 또 한차례 짐을 옮겨,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평소 자주 왕래하던 이웃들 덕분에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얼마 전 LA에서 아무도 찾아가지 않은 1865명의 유골을 땅에 묻는 장례식이 있었다고 한다. 1896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곳에는 10만여 구의 유골이 묻혔다. 이들은 양로시설, 병원, 집이나 아파트, 또는 길에서 외롭게 혼자 사망한 이들이다.   무연고자 시신은 LA카운티에서 화장을 해 3년 동안 보관했다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으면 12월에 한 곳에 묻히게 된다. 이번에 묻힌 유골은 2021년 사망한 사람들이다. 슬픈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유골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LA카운티 사망자의 1.2%만이 무연고자였는데, 2013년에는 2.75%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메릴랜드주의 경우에는 2000년에 2.1%였던 무연고자 시신이 2021년에는 4.5%로 늘어났다고 한다.     카운티에서는 시신을 수습한 후 가족이나 친지를 찾아 연락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유골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유골을 찾아가는 데는 400달러 가량의 비용이 든다. 대부분은 가족과 오랫동안 연을 끊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다. 얼마 전 우리 신부님에게 장례 미사를 부탁하는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부부가 외롭게 살다가 남편이 사망하자 물어물어 신부님들에게 장례 미사를 부탁했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터라 교적도 소속된 성당도 없어 모두 거절을 당했다. 사정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 신부님이 교우와 함께 가서 정성스레 장례 미사를 치렀다고 한다. 외로운 이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5남매, 7남매가 흔하고 이웃에 친인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가족구도가 이젠 핵가족, 혼밥, 혼술의 정서로 바뀌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는 세상이 되어, 일가친척이나 친구와도 사소한 일로 소원해지면 쉽게 멀어지고 만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마지막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 사소한 일로 멀어졌던 이들과 화해하고 소통하는 용기를 내어보자. 한때 서로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과 인사 없이 이별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좋은 이웃들 덕에 차고 공사는 잘 마무리되었다. 짐도 정리를 해서 공간도 늘어났다. 봄이 되면 차고 문 열고 친구들을 초대해 책도 빌려주고 함께 커피도 마실 생각이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이웃사촌 la카운티 사망자 무연고자 시신 장례 미사

2024-12-22

[이 아침에] 벼랑 끝에서 다시 날아올라라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점점 없어지는 마당에 스마트폰까지 일상화되면서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는 숫자만 나오면 괜히 머리부터 아프다. 아무리 숫자에 약해도 잊어서는 안 되는 숫자가 있다. 가족의 생일, 부모의 기일, 결혼기념일 등이다.   개인의 추억이 담긴 날짜뿐 아니라 모두가 기억하는 날이 있다. 물론,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된 공휴일도 있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 공유되는 날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들이다. 6·25, 10·26, 5·18, 4·19, 12·12 등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날짜를 떠올릴 때마다 슬픈 현대사의 장면이 되살아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로 다가온다.   얼마 전 한국의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으로 인해 모두의 기억 속에 또 하나의 날짜가 새겨졌다. 12·3이라는 숫자다. 12월3일, 국민들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뉴스에 화들짝 놀랐다. 한국에서 가장 최근에 선포된 계엄이 1979년이었다고 하니, 젊은 세대는 역사책에서만 보던 계엄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 2시간여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고, 대통령은 계엄령 선포 6시간 만에 계엄령을 해제하면서 계엄령 선포는 일단락되었지만,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해외 언론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계엄 사태를 통해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정치적 판단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계엄령 선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고, 동원된 군인과 경찰의 정당성을 논하는 등 소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비극으로 기억되는 날들은 우리나라가 벼랑 끝에 몰린 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늠름하게 다시 일어났다. 전쟁의 아픔을 극복했고, 경제적 위기를 넘어섰고, 정치적 혼란마저 수습했다. 시간이 지나면 12월3일도 비극적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겠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벼랑 끝에서 날아오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어떤 사람들인가? 굶주림 속에서도 형제자매의 궁핍한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홀몸으로도 넘기 힘든 사선을 넘으면서도 등에 업힌 자식을 내팽개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온갖 괄시와 냉대를 받으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 중동의 사막에서 구슬땀을 흘렸고, 서독의 탄광에서 검은 먼지와 싸운 사람들이다. 낯선 나라에 맨몸으로 와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일구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다.     12월3일도 그런 날이 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우리에게는 저력이 있다. 무엇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절대로 뭉쳐질 것 같지 않은 낱알들처럼 보이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마음을 모아 미래를 준비하는 품위를 지닌 놀라운 민족이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고 이어령 교수가 나라의 위기를 예견하면서 기도했던 것처럼 ‘비상(非常)에는 비상(飛翔)할 때이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위기의 벼랑 끝에서 다시 한번 힘차게 날아오르는 자랑스러운 조국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계엄령 선포 비상계엄 해제 정치인들대로 소리

2024-12-12

[이 아침에] 아름다운 뒷모습

이 해도 저물어 간다. 얼마 전 올해 말에 은퇴하는 존을 만나서 점심을 함께했다. 처음 그를 봤던 이십 년 전보다 머리숱이 많이 줄었고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잡혔다. 본인이 톰 셀렉을 닮았다고 해도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아마 짧은 까만 머리와 콧수염 때문이 아닐지 싶다.     존은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프로젝트를 맡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담당자가 누구인지, 어떤 계획을 짜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풍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또한, 나름대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도 했다. 확신에 찬 그의 말과 태도는 적극적이었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십 년쯤 전이었을까. 한번은 문제가 터졌다. 모두가 알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였지만, 복잡한 일이어서 어느 팀도 맡아서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서로 다른 팀이 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하지 않았다. 여러 팀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서로 지적하고 책임 전가하기에 바빴을 때, 팀장이었던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누군가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고 그 팀만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자기 팀의 행동과 그로 인한 결과를 수용하는 그의 자세와 책임감이 상쾌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내가 존에게 끌린 이유 중의 하나였다.     회사에서 청춘을 바쳐 일하는 동안, 그는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고, 성격 차이로 이혼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던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두 아들은 독립해 나가서 한 명은 콜로라도, 다른 하나는 뉴욕에서 산다. 그 외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한 직장에서 40년을 근무했으니 그동안 좋은 날도 있었겠지만, 동료와의 갈등과 업무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많았을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화가 나고 아니꼽고 치사한 날이 왜 없었을까. 그래도 다 참아내고 한 업체에서 칠십세 가까이 일을 했으니 만족하다고 했다. 이것이 축복이라고 덧붙였다.   며칠 전에 업무 관계로 자주 충돌했던 래리한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단다. 두어 해 전에, 먼저 퇴직한 그가 먼저 연락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은 삼십 년을 함께 한 건물에서 일했다. 은퇴하면 등을 지고 일했던 사람도 만나는 사이가 되나 보다.     존은 이제부터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필요한 곳에서 남을 배려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년에는 패서디나시에서 주관하는 로즈퍼레이드에 참여할 꽃차를 꾸미는 일에 자원봉사하고 싶단다. 다음에 만나면 어떤 퍼레이드 플로트를 장식했는지 물어봐야겠다.     올해 은퇴하는 모든 분에게 행복과 기쁨이 풍성하기를 바란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끝까지 견디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뒷모습 퍼레이드 플로트 책임 전가하기 직장 생활

2024-12-04

[이 아침에] 감사를 나누는 자리

감나무 잎이 붉은빛을 더해간다, 열매를 떠나보낸 채. 추수 감사 절기를 지난다. 일상의 사소한 나눔을 넘어 애써 이웃에게 눈을 돌리고자 했다. 연중행사로 굽던 칠면조 요리도 딸들에게 넘긴지 여러 해다. 올해는 손주들이 칠면조를 굽겠다며 발걸음을 종종거린다. 뒷자리에 물러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할머니의 위치도 쉽진 않다.   3대 우리 가족은 자원봉사 대열에 끼었다. 지구 구석구석에 선물을 전달하는 준비 작업에 봉사자로 자원했다. ‘Samaritan’s purse Ministry Center’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넓은 창고에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Operation Christmas Child’는 정성스럽게 포장한 선물 상자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내는 프로젝트다. 100여 개 나라의 교회를 통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희망을 나누고자 함이다. 이 선물 상자를 받은 아이들은 ‘위대한 여정(The Greatest Journey)’이라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어릴 적, 신발 상자를 구해 선물을 담았다. 자기가 원하는 아이템을 고르며 즐거워했다. 바비인형, 공, 동물 인형과 같은 ‘WOW’ 아이템을 넣었다. 그 외에 재미있는 장난감, 위생용품, 옷가지, 학용품들로 상자를 채웠다. 선물을 받는 아이에게 손편지, 카드도 만들어 넣었다, 마치 친구에게 보내듯이.     우리는 상자 속 물품을 검열했다. 액체나 현금, 음식, 위험한 물건은 제거해야 했다. 물품 내용에 따라 남, 여, 나이를 구분하여 표딱지를 붙이고 상자를 포장했다. 손을 빨리 움직이다 보니 땀이 났다. 검사한 상자를 포장해서 더 큰 상자에 넣고 컨테이너로 배달하게 된다. 상자들이 줄지어 움직이는 모습은 사랑의 릴레이를 보는 듯했다. 선물 상자는 문명의 혜택이 잘 닿지 않는 곳 아이에게 배송된다. ‘Follow Your Box’를 통해 온라인으로 기부하고 선물 상자의 최종 목적지도 확인할 수 있단다. 올해는 필리핀 산속 마을로 달구지를 타고 산길을 오를 것이다. 선물을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주는 것이 더 큰 기쁨임을 새삼 느낀다. Giving thanks, Great Joy! 감사가 머무르는 자리를 시에 새겨본다.   (중략) 지구 끝에 사는 친구를 위한 선물을 담은 상자/ 겨울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매달린 나무/ 눈물 젖은 빵, 주름진 손 모은 식탁/ 살그머니 놓고 간 병실 앞 죽그릇//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했을 때 소소한 기쁨이 있다/따뜻한 손길, 위로의 한마디가 울림을 준다/ 하루를 선물로 받을 때 모든 것은 충분하다/ 막다른 골목에서 한 걸음 나가게 하는 샛문이/ 열린다/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평강의 물결을 붙잡는다//   그 자리에 감사가 머물고 있다.  이희숙 / 시인·수필가이 아침에 감사 선물 상자 추수 감사 신발 상자

2024-12-02

[이 아침에] 밤새 안녕하신지?

타이페이에 놀러 간 아들아이가 카톡을 했다. 우리 사업장인 야구 연습장에 도둑이 들었다며. 알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건물 책임자가 아들아이로 되어있어서 여행 중인 아들에게 연락이 간 모양이다.   마침 예배 중이어서 교회를 마치고 야구연습장으로 향했다. 알람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경찰은 이미 다녀갔고, 신고서 양식을 두고 갔다. 피해 물품 리스트와 피해액을 자세히 기록하여 제출하라고 한다.   가게 문을 연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난리도 아니더라며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범인들은 연습장 쪽 사무실 금전등록기를 부수고 동전을 여기저기 흩어놓는 등 난장판을 만들었다. 건축회사 쪽 사무실도 온갖 서랍을 다 열고 뒤졌으나 있는 거라곤 도면들뿐이라 가져갈 게 없었는지, 때마침 경찰이 와서 도망갔는지 다른 피해는 없다.   당장 오늘 영업 마친 후에 문을 닫고 가야 하니 철문을 고쳐야 해서 수리공을 불렀다. 돈이 얼마 안 나오자 홧김에 부쉈을까? 금전등록기도 하나 새로 사야 한다. 그나마 사람 안 다쳤으니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무얼 도모하려면 생각도 좀 하고 전략도 짜야 하건만, 무턱대고 철문부터 톱으로 자른 도둑이 안타깝다. 야구 연습장에 흔한 코인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게임용 코인이란다 도둑님아! 그걸 하나 넣으면 야구공이 여덟 개 나오는 가치밖에 없는 코인인 것을 미처 몰랐나 보다. 철문 자르려고 전기톱을 샀을 텐데 그 밑천도 못 건진 초짜 도둑 아닌가?   10년 전에도 이런 도둑이 들어 철망을 치고 이중 문을 하고 셔터를 설치했다. 그러다 다시 느슨해져서 셔터를 안 내리고 다녔더니 이런 일이 생겼다. 소홀해진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것 같아 이번 사건은 오히려 감사하다.   요즘 어려워진 경제 상황 때문에 절도범이 늘어 가정이나 상점에 피해가 크다고 들었다. 불황일 때의 도둑은 생계형 범죄로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근래엔 재미 삼아 놀이로 하는 어린 절도범이 태반이며 먹고 마시는 유흥비 마련 목적이 많은 게 문제라고 한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나의 가진 것이 내 소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배부를 때, 배고픈 이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 타인을 위해 나누는 분량이 그 사람의 영성이라고 들었다. 나눔이 없는 삶은,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범은 아니어도 도둑질하는 삶이나 마찬가지라는 글을 읽었다.   땡스기빙의 절기에 도둑맞은 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태껏 무난히 산 것에 감사(Thanks)하며 작은 것이나마 주위와 나눌(Giving) 때이다. “해피 땡스기빙!”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안녕 사무실 금전등록기 야구 연습장 알람 회사

2024-11-25

[이 아침에] 젊은 엄마의 초상

젊은 엄마를 기억한다. 나는 아마 다섯 살, 엄마는 스물다섯.  신작로, 늘 흙바람이 아지랑이처럼 스멀거리는 곳. 공주에서 올라오는 버스가 멀리서 콩알만 하게 나타났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관방 차부 앞. 다른 한 손에는 눈깔사탕 두 알.     새벽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실눈을 뜨니 엄마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안아주었다. 다른 날보다 더 꼭꼭. 차부에 가서 사탕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혹해서 그런 일이 전에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우리 집 식구 모두 따라나섰다. 할아버지만 빼놓고. 할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싸리문을 나설 때도 안방 문을 빼꼼히 연 채 헛기침만 하셨다. 작은아버지 그리고 새색시 작은 엄마도 따라나섰다. 바로 아랫집에 사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도 같이 나섰다.   우리 동네 삼바실에서 관방까지는 외길, 겨우 소달구지 하나가 다닐만한 좁은 길이었다. 아랫말 끝자락 동네 고사 지내는 모새독고리를 지나, 행상집, 서낭당, 애장터를 지나면 학교가 보이고 곧 관방. 어린애 걸음으로도 이십 분도 안 걸리는 길이었지만, 한 번도 혼자 와본 적은 없었다.     서낭당을 지나며 엄마가 돌을 하나 주워 이미 내 허리 높이의 돌무더기에 올려놓았다. 외할머니는 작은 소리로 “관세음보살”늘 부르셨다. 우리 식구는 원래 별말이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신작로 가에 옹기종기 서 있는 그들의 숨소리에 하얀 김이 서린다.  겨울이었던 듯. 멀리서 보이던 버스가 갑자기 다가온다. 스르륵 차가 멈춘다. 차 문이 열린다. 차부라는 말이 버스 정류장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엄마가 손을 놓는다. “엄마,” 내가 자지러지게 소리친다. 엄마는 차에 오르며 나를 살짝 민다. 뒤에서 이모가 나를 받아 안는다. 둘이서 오랫동안 연습을 한 듯.  차가 부르릉 떠나버린다.     나는 발버둥 치며 이모의 품을 벗어난다. “엄마아 ~~” 울며불며 차가 가버린 북쪽으로 뛰어간다. 버스는 이미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버스 뒷바퀴에서 잔돌들이 튕겨 나왔다.   엄마는 일 년 후에 돌아오셨다. 시골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세일러복 한 벌이 엄마의 선물이었다. 그 옷보다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은 것은 엄마의 사진 한장. 유리문이 달린 부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흑백 사진.  20대 어린 엄마의 얼굴은 그 사진 속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엄마의 서울살이는 식모살이였다. 아무도 내게 직접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조각을 맞추어 보고 내가 철이 든 다음에 깨달았다. 그때 엄마가 벌어온 그 돈은 그 후 우리 집의 경제적 기반의 원천이 되었다.     거의 70년 전 일이었다. 90이 넘은 엄마의 기력과 기억이 소실점을 향해 빠르게 흘러간다. 평생을 외아들로 살아온 나에게 엄마는 “어제 네 형은 왔다 갔어”하고 말한다.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애장터에 뭍인 첫아들이 멀쩡하게 장성하여 살아있다고 착각하시는지.   김지영 / 변호사이 아침에 엄마 초상 그때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버스 뒷바퀴

2024-11-21

[이 아침에] 터키 나눔

내가 터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5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 집은 벽제에 있었는데, 근처 미군 부대의 부중대장 부부가 3명의 어린 자녀와 함께 아래채에 세를 살고 있었다. 난 아내인 바버라에게 영어를 배웠고, 가끔 그녀가 외출할 때면 베이비시터를 해 주었다.     양계장을 하시던 아버지는 넓은 마당에 칠면조를 몇 마리 키우고 있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자 누가 먼저 꺼낸 이야기인지 터키를 구워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바버라가 오븐을 빌려와서 터키를 굽고, 어머니가 한식을 준비해서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터키 한 마리는 우리 식구 7명에 바버라네 식구 5명, 도합 12명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터키는 맛만 보고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살을 발라 먹고 남은 터키의 뼈는 바버라가 수프를 끓인다고 가져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추수감사절 만찬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현지인과 터키를 구워 함께 먹었으니 추수감사절의 시작 때 그녀의 조상이 했던 것을 재현했던 셈이 아닌가.     1년 후, 바버라네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또 몇 년이 흐른 후, 나도 미국에 오게 되었다. 미국에 오던 해, 1981년, 겨울 크리스마스 연휴에 교우를 따라 유타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거기서 바버라네 가족을 다시 만났다. 그날은 그녀가 만든 터키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내가 한동안 터키를 멀리하게 되는 사건도 있었다. 다음날, 교우의 이모님 댁에서 터키 껍질을 다져 넣고 만든 만두를 먹게 되었는데, 만두를 잘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조류 특유의 비릿한 맛. 그 후 몇 년 동안 터키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냈다.     직장생활을 하며 조금씩 터키 샌드위치에 맛을 들이며 다시 터키를 먹게 되었고, 추수감사절이 되면 구운 터키를 먹게 되었다. 홀아비 시절, 추수감사절이 되면 본스마켓에서 파는 터키 디너 세트를 사다가 오븐에 데워 먹었다. 어느 해인가 추수감사절이 다가왔는데 오븐이 고장 났다. 할 수 없이 마켓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터키를 데워달라고 부탁을 하니 인심 좋은 백인 직원 아줌마가 원래는 안 되는 일인데 특별히 해 준다며 데워 주었다. 오븐을 그다음 해까지 고치지 못해, 또 가서 부탁하니 이번에는 데워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해 추수감사절에는 콘비프를 끓여 먹었다.     아내를 만난 후 추수감사절이 되어도 더는 터키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제 내가 나서지 않아도 맛있는 터키 구이가 상에 오른다.     미국인에게 추수감사절 터키는 우리가 설에 먹는 떡국과 같으며,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이 있건 없건, 가족이 있건 없건, 모든 이들이 터키를 먹는다. 명절이면 시집에 갈 것인지, 친정에 갈 것인지를 두고 다툴 일도 없다. 형편이 되는 집에 모여 음식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때 주변에서 외롭게 지내는 한, 두 사람을 초대해 함께 먹기도 한다.     터키가 입에 맞지 않으면, 닭도 좋고, 아니면 한식도 좋다. 무얼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렵고 외로운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외롭게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없는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터키 추수감사절 터키 터키 샌드위치 한동안 터키

2024-11-20

[이 아침에] 하나쯤 갖고 싶은 ‘천천히 가는 시계’

벽시계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벽시계 안에는 일정하게 움직여야 할 초침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건전지가 다 닳았는지 6시부터 9시까지는 한 칸 올랐다 두 칸 내려가고, 다시 두 칸을 오르다가 기운이 달렸는지 다시 한 칸 미끄러지면서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인다. 겨우 9시에 오른 초침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지막 턱걸이 하나를 앞둔 사람처럼 안간힘을 다하며 마지막 용을 쓰더니 12시라고 쓰인 꼭대기에 올랐다.     시곗바늘이 어기적대며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이런 시계 하나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가는 시계’ 말이다. 시곗바늘이 반 바퀴 도는 데 30초가 아니라 한 40~50초나 걸렸으니 이런 시계 하나만 있으면 시간을 넉넉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상에 오른 시곗바늘은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내려가면서 결국은 60초에 맞춰 한 바퀴를 돌더니 분침을 한 칸 앞으로 돌려놓았다.     오르막길을 더디게 올라가서 내리막길을 만나면 쏜살같이 내려가는 시계처럼 세월도 끝에 가서는 급하게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다. 온종일 하늘에 떠 있을 것만 같던 해도 때가 되면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하더니 한순간에 사라지고 땅거미가 찾아온다. 가는 길이 급하기는 달도 마찬가지다. 월초라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월말이 되고 걸핏하면 달이 지나서야 달력을 넘기기 일쑤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달음박질하듯 달아나는 시간을 좇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저문다. 더는 시간을 붙들 힘도 없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전지를 바꿔 끼운 벽시계는 째깍째깍 제 갈 길만 갈 뿐이다.      어디 천천히 가는 시계는 없을까?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의 푸념을 들었는지 나태주 시인이 그런 시계를 하나 내놓았다. 시인이 노래한 천천히 가는 시계는 수탉의 긴 울음소리로 아침 먹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뻐꾸기의 잰 울음소리에 점심때가 지나고 있음을 느끼고, 부엉이의 더딘 울음소리에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다.     또, 나팔꽃이 피어서 날이 밝은 것을 알고,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다. 시인은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고,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를 소개하면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속에 기르고 싶다’라고 노래했다.     ‘천천히 가는 시계’라는 제목의 이 시를 읽으며 우리도 그런 시계 하나쯤 우리 몸속에 기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길러야 하는 ‘천천히 가는 시계’는 사람을 향한 너그러움으로 나이 들었음을 알게 하고, 세상을 향한 이해와 사랑으로 어른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하고, 웬만한 고난쯤은 지금까지 쌓은 연륜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시계다. 또 한 해가 이렇게 옴나위없이 저물어간다. 빠른 세월을 탓하기 전에 이해와 사랑, 너그러움으로 움직이는 ‘천천히 가는 시계’ 하나쯤 우리 마음에 길러 보자. 가는 세월이야 붙잡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세월에 치여 살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시계 시계 하나쯤 나태주 시인 최소한 세월

2024-11-13

[이 아침에] 남의 아들

점심시간에는 주로 직장 동료들과 세상 사는 얘기를 한다. 머리 아픈 업무 문제를 토론하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동료인 중국인 3세, 재키는 아들이 하나 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말 없고 온순하던 리키가 고등학생이 되더니 완전히 변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외아들에게 찾아온 사춘기는 모든 가족에게 아주 혹독했다. 십 대 중반에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것까지 이해하겠는데, 문제는 저 자신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데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갈등이 잦았다.   한번은 리키가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가 친구를 만나고 새벽에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출근하려고 시동을 걸자, 차에 개스가 없다는 불이 들어왔다. 아침에 두 남자의 고함을 뒤로한 채, 일을 나온 재키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한 사연이었다. 그날 손도 대지 않은 그녀의 점심은 곧장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리키는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지 사흘 만에 기다렸다는 듯이 시카고로 떠났다. 그곳에서 친구와 자취하며 직장을 다니고, 전공을 두 번 바꾼 후에야 대학교를 졸업했다. 부모와 떨어져 독립해서 살면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냉담했다. 그동안 두어 번 재키한테 연락해서 아파트 임대료를 내야 하니, 돈을 꿔달라고 했다. 많은 돈은 아니었다.   그사이 많은 직장을 전전했다. 어떤 사업체는 오버타임 일을 해도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회사가 망해서 월급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일시 해고도 당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몇 년을 지내더니, 사회성과 책임감을 배웠고, 제법 직장을 보는 안목도 생겼다.   이젠 엄마한테 직장에서 승진한 소식도 전하고 그전에 빌려 간 돈도 갚고 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아직도 소원하지만, 크리스마스 때는 꼭 집에 와서 며칠씩 묵고 간다.   재키는 몸이 좋지 않아서 은퇴하고 싶지만 적어도 2년은 더 일해야 은퇴 후 생활이 안정될 것 같아 미루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리키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지금 풀타임으로 일하고 이 회사는 베네핏도 좋아. 이제 내가 생활비 대줄 테니, 그만 은퇴하세요.”   재키는 아들이 이렇게 돌아와 줘서 행복하다며, 더 바라는 것은 죄일 거라고 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샌드위치를 먹는 그녀가 편안해 보였다.   오두막에 기쁨이와 슬픔이가 사는데, 둘이 번갈아 가며 집을 지킨다는 시가 있다. 슬픔이가 집에서 나갔는지 기쁨이가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끝까지 아들을 사랑하며 기다려 준 친구가 자랑스럽다.   리키 같은 사람이 내 사위라면 좋겠다. 시월의 아주 멋진 날이었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 직장 동료들 업무 문제

2024-11-05

[이 아침에] 노예는 투쟁할 줄 모른다

얼마 전 신문에서 공감이 가는 글을 만났다. 현대 사회를 분석하며 ‘우리는 이미 지구라는 정신 병동에 함께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었다. 그래서 갇혀버리지 않는 일상이 되기를 꿈꾼다.   잘못된 습관에 저항하지 않아 결국은 악습이 된 두 번째 본성과, 존재로 지향하는 참된 자아로서의 본성이 대치 상태로 싸우는 것은 두 본성의 결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과 존재가 지향하는 자유는 확연히 갈라지는 길이다. 이 길을 뒤섞어 놓고 원하는 대로 선택하게 된 것은 판도라의 빗장이 풀렸음을 의미한다.   판도라는 끝을 모르는 욕망이다. 통제가 되지 않을 때는 파괴의 위력으로 다가온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 또한 점진적으로 높아져 미친 놀이판의 면적 또한 넓어져만 간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는 이 사회적 불안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밤의 어두움은 더 기괴한 느낌이다. 창조적인 영감을 주던 그때의 그 밤이 아닌 것 같아서 저녁 시간 교회에 나가는 일도 망설인다. 새벽에도, 대축일 늦은 밤에도 걸어가서 참석하곤 했는데….모든 스케줄이 태양이 떠 있을 때까지로 고정되어 버린 듯하다.   나 역시 태양의 빛을 따라서 일상을 시작하고 끝내기로 했다. 새벽 다섯시쯤에 일어나 명상 1시간, 스트레칭 40분, 그리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삶은 계란과 치킨 소시지, 전날 만들어 둔 샐러드와 커피 한잔이다. 9시쯤이면 손빨래를 하고 손글씨를 쓰고 신문을 읽는다. 점심 전까지 손과 두뇌를 움직이기 위해 꼭 하는 것이 필사와 독서다. 필사는 속도가 느리긴 해도 독서보다 기억의 기능이 좋아진다. 오후 3시쯤엔 요구르트와 넛 종류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중간중간 레몬수를 마시고, 과일과 집에서 구운 팥 소가 든 홀그레인 호떡도 먹는다. 먹는 일이 심플해지면 삶의 짐에서도 가벼워진다.   자유는 끊임없이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덜어내는 행위이다. 소유하려는 것은 탐욕의 반복일 뿐 자신의 모든 것을 쓰레기통으로 만들게 된다. 정신병동의 면적이 넓어지도록 놔두고 싶지 않다. 너무 풍요로워서 불행해진다면 가던 길을 바꿀 것이다.   나에게는 가난과 자유가 터닝 포인트였다. 정신병동이나 다름없었던 늪을 빠져나오도록 다그치는 각성의 소리를 따르게 되었는데, 사막으로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텐트의 역할 그 이상이 되어주지 못하는 육신을 끌어안고, 적게 먹고, 쓰고 사용하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공동의 유산임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했다.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마실 물 조차 모자라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미래는 생태학적 빚더미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자성하도록 만든다. 개개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자업자득이기에 그렇다.   온전해진 내면의 힘이야말로 창조목적으로 이끄는 것을 더욱 원하고 선택하게 한다. 파괴의 목적을 멈추고 생명 창조로의 전환을 위해서 정신병동에 갇히지 않으려면 생활 방식에 투쟁이 있어야 한다. 최경애 / 수필가이 아침에 노예 투쟁 본성과 존재 정신 병동 사회적 불안감

2024-10-31

[이 아침에] 추억의 옛 가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운동하거나 산보를 하며 노래 듣기를 좋아하셨다. 허리에 워크맨을 차고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옛노래를 헤드폰을 끼고 듣곤 하셨다. 카세트는 30분 한 면이 다 돌고 나면, 테이프를 바꿔 끼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한번 충전에 몇 시간이고 중단 없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아이팟을 여동생이 사 드렸는데, 그 자그마하고 생소한 기기가 불편하셨던지 얼마 후에는 다시 워크맨으로 돌아갔다.     20여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한창 유행하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지인이 CD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한데 그때 내 차에는 CD 플레이어가 없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사달라고 했다.     그 후 장만한 차에는 CD를 6장 넣고 들을 수 있는 CD플레이어가 있었고, 지금 타는 차에는 USB를 꽂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 요즘은 블루투스로 스마트 폰을 연결하여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전화기에 담을 필요도 없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연결해서 듣는다.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모아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연결해서 들을 수도 있다.     요즘 미국 음원 사이트에는 웬만한 한국노래는 다 있다. 최근에 애플 뮤직에서 ‘추억의 옛 가요’ 음반을 찾았다.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같은 옛 노래가 원곡 그대로 들어 있다. 아버지가 즐겨 듣고 부르시던 노래다.     내가 ‘세시봉’의 노래를 즐겨 듣던 무렵, 아버지는 나이 든 가수들이 등장하는 가요무대를 즐겨 보곤 하셨다. 재미없는 노래를 지그시 눈을 감고 듣는 아버지가 멀게만 느껴지곤 했었다.     음악은 취향이라 사람마다 좋아하는 노래가 다를 수 있지만, 대개는 젊은 시절 들었던 노래, 또는 이와 유사한 성격의 노래를 즐겨 들을 것이다. 나 역시 7080 노래를 즐겨 듣는다. 하지만 최근 발견한 ‘추억의 옛 가요’도 이제 즐겨 듣는 플레이 리스트에 올려놓고 가끔 한 번씩 듣곤 한다.     처음 이 음반을 듣던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잊고 있었지만 내 몸은 이 노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지난 세월이 아쉬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50-60년 전에 들었던 노래가 전해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     봄날 파랗게 싹을 틔워 나오던 새싹이 어찌 가을을 알고 낙엽을 알겠는가.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비바람을 겪어야 다가올 가을을 예감할 수 있을 터.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어 온갖 호사를 누린 사람이나, 허름하고 소박한 삶을 산 사람이나, 결국 가을이 되면 다 비슷한 길에 들어선다.   옛 노래를 들으며 과거를 추억하고, 지금은 사라진 이들을 생각하고, 내게도 다가올 마지막 잎새를 기다린다. 가을은 그렇게 깊어 간다.  고동운 / 전 가주 공무원이 아침에 추억 가요 노래 듣기 음원 스트리밍 cd 플레이어

2024-10-30

[이 아침에] 밀당이 필요했던 여행

운동을 싫어하는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도 호텔 방에서 뒹굴며 책만 읽다 오곤 한다. 몸을 움직이는 건 다 노동이라 생각해서 남들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고생문이 훤하다”라고 김을 빼는 편이었다.   다리 관절 수술을 한 데다 평발이어서 오래 걷질 못하는 불편함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공항에선 휠체어 서비스를 받고, 크루즈 배에선 스쿠터를 빌려 탈 수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항구에 정박한 후 선택 관광을 할 땐 보행 거리가 짧은 가장 낮은 단계의 옵션을 택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무엇을 보지 않을까’를 결정해야 하는 희한한 여행이었다. 나의 몸 상태를 고려 않고 건강한 이들처럼 관광에 욕심을 내다간 큰일을 치를지 모르기에 말이다. 꼭 볼 것만 보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하는 내 마음의 밀당이 필요했다.   남들이 박물관 전시실을 돌아볼 때 나는 중간에 빠져나와 밖의 벤치에서 햇볕을 쬐며 사람구경을 하는 게 더 재미있었다.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낯선 나라의 공기와 풍광을 홀로 즐기는 시간도 참 좋았다.   각 나라 사람이 뒤섞인 여행지에서 호리호리한 남편은 일본인으로 보고,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리가또” “셰 셰 ” 를 화답하느라 추임새처럼 써보며 웃었다.   크루즈의 마지막 날, 요코하마에서 온천 도시 아타미로 갈 때 신칸센을 탔다. 히까리호는 정말 빨랐다. 올해가 신칸센이 생긴 60주년이라며 기념 스티커를 준다. 그에 비해 KTX는 올해가 20주년이다. 일본의 고속 열차는 대한민국보다 40년이 앞섰다. 최근의 IT기술은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하나, 공공 서비스나 공중도덕과 배려는 아직 일본이 앞선듯하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다 선진국인 것은 아닐 것이다.   대만과 일본을 거쳐 모든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에 도착했다. 광고에 안내방송까지 신경 안 써도 다 이해되는 모국어의 나라. 타이밍이 딱 맞게 유럽여행을 떠난 동생 집이 비어서 호텔 대신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다만 현지에서 개통한 전화가 없어 약간 불편했다. 무엇이든 실명 인증을 해야 해서 음식이나 물건을 미국 전화로 주문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우버택시는 미국의 계정과 연계되어서 택시 타기는 편했다.   선인들은 여행을 ‘글자 없는 책’이라는 뜻으로 ‘무자지서(無字之書)’라 불렀다. 여행은 길에서 하는 독서라는 뜻일 터이다. 가져간 두 권의 책을 읽고 여행도 했으니 “독서로 혜안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한다” 는 멋진 중국속담에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한 달가량 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 것이 대견하다. 여행길에 부축하느라 수고한 남편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밀당 여행 이번 여행 휠체어 서비스 독서로 혜안

2024-10-27

[이 아침에] 라이프타임 개런티

‘좋은 것을 당신에게 선물하라’는 쪽지가 식당에서 받은 포천 쿠키에서 나왔다.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것처럼 ‘옳다구나’하며 파카를 주문했다. 곧 다가올 파타고니아 여행 준비라는 핑계가 있었다. 배달된 옷을 본 남편이 멀쩡한 파카가 여럿 있는데 새것을 또 주문했냐고, 미니멀리즘은 포기한 거냐고 잔소리한다.   10년 전 산악회에 처음 가입하며 언젠가 남편과 존뮤어 트레일 갈 때 입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며 커플룩으로 장만한 옷이 있다. 그런데 수년 전 캠프파이어를 할 때 불똥이 튀어 생긴 구멍에서 털이 계속 빠져 임시변통으로 반창고를 붙였다. 빨래도 못 하고 옷장 속 깊이 숨겨두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남편에게 이실직고하듯이 밴드로 땜빵한 옷을 마침내 보여 주었다.   생각난 김에 ‘수선할 방법이 있을까’하며 제조사 사이트를 뒤져보다가 ‘라이프타임 개런티(Ironclad Guarantee-Patagonia Help Center)’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매 후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환불이나 교환을 해주고 사용 중 생긴 마모나 손상은 실비로 고쳐준다는 약속이다. 이메일로 사정을 설명하니 일단 구멍이 난 곳을 막는 패치를 무료로 보내준다는 답장이 왔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가까운 매장을 방문해서 수선팀과 의논해 보란다.   판매한 제품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무한 책임을 질까, 궁금해서 구글링했다. 우선 회사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라는 인물의 이력이 놀랍다. 암벽등반 애호가인 그는 암벽에 못처럼 망치로 박아 등산 로프를 연결하는 ‘피톤’을 제작해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모품인 피톤이 자연훼손의 주범임을 깨닫고 생산을 중단, 과감히 수익을 포기했다. 그리고 연구 끝에 자연 훼손이 거의 없는 알루미늄 클립을 대체 상품으로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업이 이윤추구에 머물지 않고 환경에 대한 책임이라는 가치도 실현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리고 본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타협 없는 실천을 한다. 그는 이미 전 재산인 30억 달러를 환경보호재단에 기부했으며, 사업이 잘되건 못되건 매년 매출의 1%를 기부한다니 놀랍다.   이 회사는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고 광고를 한다.  자칫 고객의 관심을 끌려는 노이즈마케팅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이 광고 문구는 놀랍게도 기업의 진심이다. 한번 사서 오래 입고 또 수선해서 계속 입으라는 것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재사용을 강조한다.   이 회사는 전 제품을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 환경 피해가 거의 없다. 면의 원료인 목화도 화학비료 대신 손으로 잡초를 뽑고, 무당벌레를 이용해서 해충을 잡은 유기농 제품만 이용한다고 한다. 창립 50년이 된 이 회사의 앞으로의 또 다른 50년의 행보가 기대된다. 평생 보장을 약속하는 브랜드가 마음에 든다.     나는 환경보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 주문한 파카를 환불하고 패치를 붙인 파카를 입어야 하나, 갈등이 생긴다.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라이프타임 개런티 라이프타임 개런티 유기농 제품 친환경 소재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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